<동행> 우리 가족 수호천사, 열두 살 선우

  • 2025.10.17 15:52
  • 2개월전
  • KBS

매일 아침 컴컴한 새벽이면 비닐하우스로 출동하는 할머니 미향 씨(59) 대신 든든하게 동생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 남매 중 둘째인 열두 살 선우. 하루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방 시들고, 자동화 설비가 없이는 실패하는 일도 많은 모종을 키워서 시장에 내다 팔고 있는 할머니.

까다로운 모종을 키우는 일부터 시장에 나가 장사하고, 거기에 틈날 때면 동네 품삯 일까지 다니면서 사 남매를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할머니를 보며 조금이라도 할머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던 선우. 가족의 수호천사가 되기로 결심한 뒤 무슨 일이든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동생들과 같이 모종 하우스 일을 도와주고, 설거지에 청소 등 기본적인 집안일은 물론이고, 할머니가 없는 동안 동생들을 챙기는 일까지 모두 선우의 몫이다. 힘들 법도 하지만 할머니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선우는 빨리 커서 할머니를 위해 더 많은 것들을 해드리고 싶단다.

결혼 후 첫째 바름이를 낳고부터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모종을 판매해 온 엄마. 시장 사람들은 물론 손님들까지도 두 사람을 모녀 사이로 볼 정도로 가깝고 지냈다. 하지만 2년 전, 여느 때처럼 시장에서 함께 장사하던 중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엄마. 하지만 무슨 일인지 한 시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닌 엄마를 찾아 나섰고,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엄마를 발견하게 되었다.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지만 이미 뇌출혈로 정신을 잃은 후 골든 타임을 놓친 상황. 살아만 달라는 간절한 소원에도 결국 엄마는 쓰러진지 3일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엄마와 금슬이 남달랐던 아빠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사망에 삶의 의욕을 잃었고, 홀로 사 남매를 감당할 수 없어 할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게 되었다. 이후 할머닌 엄마를 잃은 사 남매를 사랑으로 돌봐왔지만, 그 상처를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다. 특히 셋째 연우(8)는 엄마가 돌아가신 충격 때문인지 매일 소변 실수를 하고 있다. 꿈에서 한 번이라도 엄마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둘째 선우(12)는 애써 그리운 마음을 감추며 할머니 대신 이불 빨래를 하며 동생들을 돌보고 있는데. 그 심정을 알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한 할머니는 오늘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수확의 계절 가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시기지만 할머닌 이맘때가 되면 오히려 걱정이 는다. 모종 장사의 특성상 봄에 잠시 판매가 좋았다가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면 눈에 띄게 손님이 준다. 게다가 겨울엔 아예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보니 할머닌 당장 아이들과 함께 먹고 살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품삯 일을 다니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사 남매와 함께 겨울을 나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걱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할머니와 사 남매가 사는 집은 지은 지 60년도 더 된 오래된 슬레이트집이다.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이제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어두운 부엌에서 식사를 챙기고 화장실에서 설거지한다. 그나마 지자체에서 방 한 칸을 고쳐줘 사 남매와 할머니까지 한 공간에서 지내다가 첫째 바름이에게만 따로 방을 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엔 열악한 상황이다.

낡은 집이지만 동생들과 할머니만 있으면 나에겐 이곳이 어떤 곳보다 특별한 공간이라며 오늘도 밝게 웃는 선우. 이 미소를 지켜주고픈 할머닌 오늘도 새벽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선다.

*이후 520회 ‘할머니의 보물, 희자매’ (2025년 8월 23일 방송) 후기가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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