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13회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갔던 조선의 건물 ‘관월당(観月堂)’의 시간을 추적한다. ‘관월당’은 지난해 일본 가마쿠라의 유명 사찰, 고토쿠인(高德院)에서 한국으로 반환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왜 현해탄을 두 번이나 건너게 되었을까. 시간여행자 지승현과 함께 100년에 걸친 ‘관월당’ 유랑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목조 건축물 ‘관월당’. 국내에서는 1988년 한 월간지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해당 기사를 집필한 이광린 교수는 이 건물이 본래 경복궁의 부속 건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한일강제병합을 두 달 앞둔 1910년 6월, 경복궁 전각의 약 6할에 해당하는 건물이 경매로 팔려나갔다. 그렇다면, ‘관월당’ 역시 이 당시 팔려나간 조선의 궁궐 건물이었을까.
전문가들은 ‘관월당’이 왕실 양식으로 지어진 사당 건물이라고 말한다. 제작진이 만난 전문가들은 ‘관월당’의 단청을 주목한다. 건물 지붕 곳곳에 그려진 운보문(雲寶紋)은 높은 위계를 가진 건물에서만 사용되는 양식이라는 것. 또한 건축 전문가들은 ‘관월당’에 사용된 목재의 가공 방식이나 파련대공, 용무늬 암막새 등 주요 부자재로 추정하건대 궁궐 장인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관월당’이 바다 건너 일본에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에 따르면, ‘관월당’을 일본에 가져간 사람은 일본 금융계 거물, 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 1870~1939)다. 그는 야마이치 증권회사 창업주이자 동경주식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관월당’은 스기노 기세이가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스기노는 당시 경영 위기에 빠진 식산은행의 채권을 대거 매입했는데, 이에 은행이 고마움의 표시로 ‘관월당’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스기노는 이 건물을 일본으로 가져가 도쿄에 있는 자신의 저택 정원 한쪽에 세웠다. 이후 1930년대 스기노는 병세가 위중해지자, 요양을 위해 가마쿠라로 거처를 옮기면서 ‘관월당’을 인근 유명 사찰 고토쿠인에 기증한다. 이 건물이 지난해까지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채 고토쿠인에 있었던 이유다.
‘관월당’을 대한민국에 기증한 이는 고토쿠인의 주지인 사토 다카오(佐藤隆雄) 씨다. 게이오대학 민족학 고고학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2010년에도 ‘관월당’ 기증을 추진한 바 있다고 말한다. 반환 교섭은 당시 일본 우익 단체의 반대와 잇따른 코로나 사태 등으로 무산되었지만, 사토 주지의 반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24년, 현지 조사, 연구, 정밀 실측 등을 진행하며 한·일 공동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이어 나갔다. 이후 사토 주지는 조건 없는 기증과 더불어 해체 및 이송 비용까지 부담했다.
관월당의 원소재지와 주인은 누구였을까. 연구조사팀은 ‘관월당’ 원소재지와 관련해 여러 가설을 제시한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송현동 부지설이다. 이 건물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소재했던 윤택영 저택 내의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윤택영(尹澤榮, 1876~1935)은 순종의 장인으로, 당대 엄청난 빚을 져 ‘부채왕’이라 불리던 인물이다. 연구팀은 윤택영이 채무 변제를 위해 ‘관월당’을 조선식산은행에 넘겼고, 이것이 결국 스기노 기세이의 손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되었을 것으로 추정 중이다.
이 외에도 창의궁지, 월성위궁지 등 ‘관월당’의 원 소재지로 추정되는 지역들이 있다. 국외유산재단은 목재연륜연대 측정 등 여러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관월당’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한 반환 그 이상으로 한일 관계 신뢰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의미를 둔다는 사토 주지. 사토 주지의 의지는 양국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백 년의 시간 동안 이방인으로 머문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관월당’의 여정은 3월 15일 9시 30분 KBS1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