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3년, 문경새재에서 거액의 ‘은 상인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수사 끝에 밝혀진 범인들의 정체는 놀랍게도 조선 최고위층 관료들의 자제들. 남부러울 것 없는 명문 사대부가의 아들들이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궁금증이 앞선다. 그리고 그 강도들 곁에는 당대 최고의 천재 문인이자 고전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도 추정되는 허균이 있었다. 도대체 그는 문경새재의 강도단과 어떤 인연이었을지, 시간여행자 지승현과 함께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추적해 본다.
문경새재 강도 사건의 주동자들은 이른바 '강변칠우'라 불리던 고위 관료의 아들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가 있었다. 서얼이란 ‘서자’와 ‘얼자’를 합쳐 부르는 말로, 아버지가 양반이나 어머니가 양인 첩인 경우 ‘서자’, 천인 첩이면 ‘얼자’라고 한다.
서얼은 법과 제도에 의해 대대손손 문과에 응시할 수 없으며, 관직에 오르더라도 품계에 한계가 있었다. 강변칠우는 서얼 차별을 철폐해 달라는 상소마저 조정으로부터 외면당하자, 관직에 나가지 않고 여주 남한강 변에 은거한다. 이들은 스스로 중국의 ‘죽림칠현’을 본떠 ‘강변칠우’라 불렀다.
강변칠우의 곁에는 허균이 있었다.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꼽히는 양천 허씨 가문의 적자였던 허균. 그는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면 서얼 친구들을 불러 모아 식객으로 대접하곤 했다. 이는 당시 성리학적 질서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허균이 어울렸던 대상은 서얼이나 승려뿐만이 아니었다. 허균은 부안의 기생 이매창과 신분·성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었는데, 특히 매창의 시를 매우 흠모했다. 매창이 죽자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를 글로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허균의 우정은 늘 신분적으로 낮은 이들과 격의 없이 이어졌다.
서얼 태생의 한계에 분노하며 이상향을 찾아 떠난 소설 속 영웅 홍길동. 허균이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홍길동전’에는 능력 위주의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던 그의 혁명적 사상이 엿보인다.
허균은 자신의 문집인 ‘성소부부고’를 통해 시대를 향한 날카로운 일침을 남겼다. ‘유재론’(버려진 인재에 대해 논함)에서는 신분적 한계에 갇혀 훌륭한 인재들이 무참히 버려지는 현실을 탄식했다. ‘호민론’에서는 백성을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중 억눌린 백성들을 ‘호민’으로 지칭하며 이들은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또한, ‘성소부부고’에는 ‘손곡산인전’을 비롯한 여러 소설이 담겼는데, 시대적 한계로 쓰이지 못한 인재들을 주인공으로 했다.
허균과 강변칠우가 살던 시대의 정국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당시 왕은 조선 왕조 첫 번째 서자 출신 왕인 광해군으로, 왕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자기보다 31살 어린 적자 영창대군과 왕위를 두고 경쟁했다.
강변칠우는 문경새재 강도살인 사건으로 덜미가 잡히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단순한 사건이 당시 불안했던 정국과 얽히면서,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역모 사건, '계축옥사‘로 비화한 것이다. 광해군이 친국한 이 옥사에서 강변칠우는 모진 고문에 강제로 역모를 실토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 끔찍한 피바람 속에서 살아남은 허균. 그는 이후 폐모론을 주장하는 등 중앙 정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달라진 행보를 보이며 형조판서까지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그의 출세는 도성 남대문에 나붙은 흉서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끝을 맺는다. 허균이 꾸몄다는 이 역모 사건의 진상을 살펴본다.
신분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강변칠우와 허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불씨는 이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서얼에 대한 차별 철폐 요구는 조선 후기 내내 수많은 연명 상소와 궐문 시위로 이어졌다. 시대의 이단아 허균과 서얼 청년들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은 무엇이었을지, ‘허균과 일곱 명의 홍길동’편은 9월 6일 일요일 밤 9시 30분, KBS 1TV 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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