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는다'고 걱정했던 주 5일제가 도입된 지 스무 해가 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너무 많이' 일한 다.
2025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833시간으로, OECD 38개국 중 6위. 우리보다 오래 일하는 나라는 멕시코·코스타리카·칠레·그리스·이스라엘뿐이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려는 실험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 한복판에 '주 4일제'가 있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일터에 맡겨둔 하루가 돌아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그 하루를 모두가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MBC 〈PD수첩〉은 '주 4일제'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 선 우리 사회를 들여다봤다.
지난해 업무상 질병으로 숨진 노동자는 1,376명. 이 중 과로와 연관된 뇌·심혈관 질환 사망자가 408명에 이른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연구해 온 스페인 발렌시아대학교 주안 산치스 교수는 한국의 ‘과로사’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고 했다. “우리한텐 그런 말이 없거든요.”
이렇게까지 오래 일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은 '시간 빈곤'에 놓여 있다. 하루 24시간 중 노동과 수면시간을 빼고 온전히 나를 위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재량 시간'이 부족한 상태다. 맞벌이 부부의 아침은 분 단위로 쪼개지고, 직장인은 집과 일터만 오가며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갖기 어렵다. 일터에 출근해서도, 퇴근해 집에 와서도 ‘고립’에 빠지는 사람들. 이렇게 오래 일하는 우리에게 하루를 줄이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흔히들 주 4일제를 ‘꿈같은 이야기’, ‘대기업이나 공무원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현실로 만든 곳들이 있다. 대구의 한 IT 기업은 불필요한 회의와 형식적인 결재·보고처럼 일의 본질과 관계없이 시간을 잡아먹는 ‘가짜 노동(pseudo work)’을 줄이기 위해 업무와 일정을 공유하는 자체 솔루션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하루의 휴일을 만들었다. 경기도의 자동문 제조기업은 스마트팩토리, 세종시의 식품 제조기업은 자동화 설비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서 휴일을 만들어냈다.
바다 건너에서는 훨씬 더 큰 단위의 실험이 진행됐 다.
2022년, 영국에서는 61개 기업 2,900여 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의 주 4일제 실험이 치러졌다.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줄었고, 기업의 매출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실험이 끝난 뒤에도 참여 기업의 90%가 주 4일제를 이어갔 다.
202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는 도시 전체가 한 달 동안 주 4일제에 들어갔다. 그 결과 시민들의 건강과 도심의 대기오염이 개선됐다. 도시가 멈출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PD수첩〉이 취재한 해외 사례에서 확인된 것은 분명했다. 노동시간을 줄여도 성과는 무너지지 않았고, 사람들의 삶은 나아졌다.
24시간 멈출 수 없는 병원. 극심한 업무 강도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에게 주 4일제는 더욱 먼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런데 세브란스병원이 2023년부터 주 4일제 시범사업을 도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3년 미만 간호사의 사직률은 19.5%에서 7%로 급감했고, 병가 일수도 줄었다. 지친 간호사들이 회복되자 직장 만족도는 물론 환자 돌봄의 질까지 함께 높아졌다. 하지만 이 하루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3년에 걸친 노사 합의, 대체인력 확보에 따른 추가 인건비 부담 등 일하는 방식과 구조 자체를 손봐야 했다.
이렇듯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대한민국 기업의 99%는 중소기업이고, 노동자의 88%가 중소기업에 몸담고 있다. 추가 인력 고용과 일 하는 방식을 개선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조건이 갖춰진 곳에서만 주 4일제가 도입된다면, 이는 또 다른 노동의 양극화를 부를 수도 있다.
주 4일제는 단순히 근로시간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그 하루를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아가 일터에 내어주던 하루를 되찾았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일하는 방식을 넘어 삶의 기준을 묻는 질문, MBC 〈PD수첩〉 ‘주 4일제, 하루를 돌려드립니다’는 오는 15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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