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기계에 일자리를 위협받은 노동자들은 방적기를 부수며 저항했다. ‘러다이트 운동’이다. 약 200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AI)이 다시 일자리를 흔들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하던 일을 AI가 대신할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어떤 일자리도 필요가 없어지는 시점이 올 겁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정반대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은 사람을 더 뽑는 경향이 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AI가 일자리를 빼앗을지, 새로운 일을 만들어낼지를 두고 테크 업계 거물조차 상반된 전망을 내놓는 사이 변화는 이미 일터에 당도했다. 한국은행은 국내 근로자 절반 이상이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해본 적이 있으며, 이런 확산 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MBC ‘PD수첩’은 AI가 바꾸고 있는 일자리의 현실을 확인하기 위해 4개월간 심층 취재를 이어갔다. 1,000만 건의 구직 이력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한국·중국·일본 3개국의 산업 현장을 직접 찾았다. 특집 2부작 ‘AI 딜레마’의 첫 번째 이야기, 〈일자리 종말론〉에서는 AI가 개인의 일과 기업의 고용 구조를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지 추적한다.
‘PD수첩’이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만난 30대 이종선 씨는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남짓 된 막내 목수다. 서툰 손으로 마감재를 자르는 그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0년 경력의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자신만의 스타일에 누구보다 자부심이 컸던 그는 AI가 자신의 디자인과 닮은 결과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것을 본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번역가, 개발자, 성우, 모션그래픽 취업준비생까지. 제작진이 만난 이들은 직업은 달랐지만 같은 걱정을 품고 있었다. ‘내 직업도 AI에 대체되지 않을까.’
20대 직장인 최지현(가명) 씨는 올해 갑작스럽게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회사가 밝힌 이유는 경영 악화였다. 하지만 그가 퇴사하며 넘긴 인수인계 목록에는 자신의 업무를 대신할 AI 프롬프트(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입력하는 명령어)도 들어 있었다. 인터뷰 도중 그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렇다면 AI는 사람의 일을 어디까지 따라왔을까. ‘PD수첩’은 직접 실험에 나섰다. 21명의 제작진이 13시간의 촬영과 밤샘 편집을 거쳐 완성한 MBC ‘심야괴담회’의 한 장면을 AI로 다시 만들어본 것. ‘심야괴담회’를 총괄하는 임채원 PD는 재작년 AI 영상을 방송에 시도했다가 “위화감이 든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랬던 그가 이번 AI 영상을 본 뒤에는 “솔직한 심정으로… 좀 무섭네요”라고 털어놨다.
AI는 기업의 운영방식도 바꾸고 있다. 혼자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가영 씨에게 AI는 기회였다. 모델도 스튜디오도 없이 핸드폰 카메라와 AI로 룩북 이미지를 만들면서 500만 원 수준의 제작비용을 30만 원대로 줄였다. 시간이 크게 줄면서 어린 자녀와 함께할 시간도 되찾았다.
한 브랜드 마케팅 스타트업은 AI 전환을 거치며 직원 수를 12명에서 4명으로 줄였다. 그런데도 회사는 비슷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빈자리를 채운 건 이름까지 붙은 20명의 AI 직원들. 이들은 스스로 일정을 정리하고 메신저로 직접 소통하며, 사람이 잠든 밤에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해당 업체 대표는 직원이 정말 AI로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경영자 입장에서는 계속 비교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변화는 이제 컴퓨터 화면 밖으로 번지고 있다. 제작진은 피지컬 AI 경쟁의 최전선인 중국을 찾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로봇 전시회의 주역은 춤추거나 점프하는 퍼포먼스 로봇이었지만, 지난 7월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와 8월 베이징 세계휴머노이드로봇대회에서는 로봇의 역할이 달라졌다. 로봇이 옷을 개고, 매대의 상품을 진열하고, 커터칼로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정교하게 잘라냈다. 사람의 움직임을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 현장의 실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일하는 로봇’이 대거 등장해 충격을 안겼다.
중국 현지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자사 AI로봇의 수행 능력은 아직 사람의 80% 수준에 그치지만, 사람은 하루 8시간 일하는 반면 로봇은 24시간 가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완벽하게 사람을 따라잡지 못해도 기업이 로봇 도입을 고려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AI 시대, 일자리의 재편은 이미 시작됐다. 기업은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익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AI가 가져올 세상은 장밋빛 미래일까, 아니면 일자리의 종말일까. MBC ‘PD수첩’ 특집 2부작 ‘AI 딜레마’ 1부 〈일자리 종말론〉은 10월 13일(화) 밤 10시 20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