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피아니스트 꿈 접고, 사랑 찾아 화천으로...혜원과 사과밭

  • 2026.10.16 14:59
  • 1시간전
  • KBS

주말 오후, 함께 길을 나서는 조혜원(33) 씨와 박덕성(37) 씨 부부.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것이 마치 데이트를 나가는 연인 같다. 그런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사과밭이다. 오늘은 사과가 골고루 빨갛게 익도록 바닥에 반사 필름을 까는 날이다. 묵묵히 척척 일을 해내는 덕성 씨와 달리, 혜원 씨는 어딘가 어설프다. 사실 그녀는 2년 만에 밭으로 돌아온, 이른바 농사 ‘경력단절녀’다.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며 줄곧 음악의 길을 걸어온 혜원 씨.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화천행을 택한 건, 오로지 덕성 씨 때문이었다.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나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두 사람.

화천과 서울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던 어느 날, 시댁 창고에 쌓여있던 사과즙을 발견하면서 혜원 씨의 인생은 바뀌었다. “제가 팔아볼게요”라고 한마디 남기고 혜원 씨는 당시 다니던 직장 사람들을 상대로 완판에 성공했다. ‘사랑하는 덕성 씨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기꺼이 농부가 되리라’라고 생각했던 그때부터 혜원 씨는 본격적으로 사과 농사에 뛰어들었다.

혜원 씨는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2년 만에 다시 사과밭에 섰다. 한해의 성적표인 수확을 본격적으로 앞둔 요즘, 혜원 씨와 가족들은 자꾸만 가슴이 뛴다.

시어머니 전윤희(68) 씨와 함께 사과 농사 교육을 들으러 가는 날. 차 안에서 오가는 고부의 대화 주제는 역시나 ‘농사’다. 사과 농사에 집중하고 싶은 혜원 씨와 평생 지어온 호박 농사를 놓을 수 없는 윤희 씨.

같은 농사라도 생각이 다르니, 두 사람 사이에는 오늘도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나이 마흔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3남매를 키워낸 윤희 씨. 학교 급식실로 일을 다니며 호박 농사에 사과 농사까지. 자식들을 위해 안 해본 게 없는, 그야말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인생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혜원 씨와는 살아온 이력만큼이나 온통 다른 것투성이다. 식성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사사건건 부딪치니 혜원 씨도 남몰래 애태우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들, 딸 낳고 농사를 짓다 보니, 혜원 씨 눈에 시어머니가 살아온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육아와 농사를 함께 하며,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가는 두 사람. 나날이 성장하는 당찬 며느리가 윤희 씨도 한편으로는 대견하다.

어느 날, 점심 차리다 말고 시어머니댁 냉장고를 열어젖히며 잔소리를 시작하는 며느리 혜원 씨. 시어머니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덕성 씨는 새벽마다 어머니의 호박밭으로 출근한다. 어머니 일 좀 줄이시라고, 식구 중 가장 먼저 일어나 밭일을 시작한다. 그런 덕성 씨가 호박 수확을 마치고 서둘러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군청이다. 사실, 덕성 씨는 농부이자 3년 차 공무원이다.

대학 시절부터 줄곧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연애하랴, 농사지으랴, 애 키우랴 번번이 낙방했다. 그러다 8년 만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2년 전, 덕성 씨가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대로 사과밭과 농사일은 멈춰버렸다. 몸 하나 아픈 것이 가족의 생계까지 흔들 수 있다는 걸 덕성 씨는 그때 처음 실감했다. 그렇게 그해 병실에서 죽기 살기로 공부해, 드디어 합격했다. 이젠 공무원과 농사를 오가며 일하고 있다.

멈춰 있던 2년을 지나, 올해 드디어 첫 수확을 앞둔 혜원 씨 가족. 혜원 씨는 풋사과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을 지나, 뜨거웠던 여름을 견디고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처럼 이젠 가족과 함께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다.

  • 출처 : KBS
  • KBS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