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굽이굽이 여울마다 삶이 흐르네” 아우라지 뗏목 길 밥상

  • 2026.10.21 14:05
  • 2시간전
  • KBS

산이 깊고 길이 험했던 시절, 강은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강원도 산골의 목재를 서울까지 운반했던 물길, ‘아우라지 뗏목 길’. 굽이치는 강물 따라 흐르는 오래된 맛의 이야기와 추억을 전한다.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에서 시작해 영월 동강을 지나 충주 목계나루까지, 험한 여울을 헤쳐 온 떼꾼들과 물길을 터전 삼아 살아온 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지역의 오래된 맛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떼꾼들의 음식,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차려 낸 강마을의 밥상, 뱃사람과 장사꾼들이 오가던 나루터의 음식까지. 강이 길이었던 시절, 뗏목 길을 따라 이어진 강마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밥상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만난다.

평창에서 출발한 송천과 삼척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만나 하나가 되는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여량면의 아우라지. 깊은 산에서 베어낸 질 좋은 나무를 떼로 엮어 서울까지 실어 나르던 떼꾼들의 긴 여정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어려운 시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거친 물살과 험한 여울을 넘나들었던 정선의 마지막 떼꾼 이균식(86세) 어르신은 스물두 살 때 처음으로 뗏목을 탔던 옛이야기를 아리랑 가락과 함께 들려준다.

거센 여울이 많았던 조양강이 흐르는 정선읍 용탄리는 떼꾼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이다. 떼꾼이었던 아버지가 서울까지 떼를 몰고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잔치를 벌여 무사 귀환을 축하했다. 팍팍했던 시절이었지만 떼돈을 벌어왔기에 돼지를 잡고 돼지머리국밥을 만들어 함께 나눠 먹었던 추억이 있기에 특별한 음식이다. 감자가루를 반죽해서 떡처럼 익힌 다음 삶은 감자와 같이 으깨 먹는 감자붕생이와 향긋한 표고구이까지, 떼꾼 마을의 잔칫상 같은 한 상이 차려진다.

정선에서 출발한 뗏목이 동강을 따라 내려오던 길목에 자리한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먹골마을. 가파른 절벽과 산자락 사이로 굽이치는 동강을 마주하고 살아온 마을 사람들은 어린 시절 물살을 가르며 내려오던 떼꾼들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뗏목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동강과 함께다. 물살 거센 여울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훈연해서 잘 말리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었다는 마을의 비법이 담긴 훈연민물고기조림은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강원도에서 효자로 불렸던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는 소박하지만 풍미가 깊은 강원도의 맛이다.

동강에서 만난 영월의 마지막 떼꾼 홍원도(93세) 어르신은 지금도 열아홉 살에 처음 뗏목을 타기 시작해 청춘을 강물 위에서 보냈다고 한다. 떼꾼들은 강변 주막에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7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는 떼꾼 밥상. 옥수수밥과 나물, 풋고추가 전부였던 밥상이지만 꿀맛이었다는 주막의 떼꾼 밥상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맛본다. 동강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세월이 담긴 밥상을 만나 본다.

영월의 서강과 동강이 합쳐지면서 남한강이 되어 서울로 흐르다 보면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나루터에 닿는다. 남한강 물길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던 목계나루터는 떼꾼들과 각지의 물건을 가득 실은 배들이 쉴 새 없이 오가던 내륙의 큰 항구였다. 세월이 흘러 풍경은 달라졌지만 오랜 세월 강물이 다듬어낸 수석을 다듬으며 남한강을 지키는 이들이 아직 남아 있다.

9대째 목계리에서 살아온 신관용(73세) 씨는 이 마을에만 맛볼 수 있는 옛 음식들을 소개해 준다. 나루터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떼꾼이나 뱃사공들을 위해 만들어줬다는 생떡국은 길 떠나는 이들을 위로해 주는 든든한 한 끼였다.

바다는 구경도 못한 강마을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었던 참마자로는 조림을 만들고, 비싼 녹두 대용으로 제사나 명절에 부쳐 먹었다는 동부전, 그리고 목계리에서만 키운다는 갓무로 만든 별미 김치인 갓채까지 차려 내면 쉽게 맛보기 힘든 목계의 오래된 밥상이 완성된다. 한때 수많은 떼꾼과 배, 사람들이 오가던 나루의 풍경은 희미해졌지만, 남한강을 터전 삼아 살아온 목계 사람들의 삶과 오래된 맛은 흐르는 강물처럼 여전히 밥상 위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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