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봄바람은 이미 담장을 넘었건만, 첩첩산중 가로막힌 산골의 시계는 여전히 겨울에 멈춰 있다. 사월에도 눈발이 흩날리고 봉우리마다 시린 기운이 감도는 곳. 봄은 더디고 겨울은 유난히도 길어, 척박한 땅을 일구는 이들에게 이 계절은 가장 고단한 시험대. 그 매서운 추위를 건너기 위해 일구어낸 삶의 지혜와 시린 가슴을 데워주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밥상.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볕보다 훈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러 간다.
험준한 산봉우리가 갑옷처럼 둘러쳐진 정선군 월통면. 2월의 끝자락에도 이곳의 바람은 여전히 시려 옷깃을 여미게 한다. 척박한 땅에서 모질고 긴 겨울을 나야 했던 어머니들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 고단한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이 바로 정선의 겨울 음식이다. 산비탈에 씨만 닿아도 쑥쑥 자라주던 메밀은 정선 사람들에게 쌀을 대신해 주던 고마운 곡식이었다. 겨울날, 메밀쌀과 감자, 그리고 갖은 푸성귀를 툭툭 넣어 끓여낸 메밀국죽 한 그릇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정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별미는 닭만두다. 담백한 닭고기에 정선 토종갓의 알싸한 맛이 어우러진 닭만두는 가장 귀한 날 귀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이었다. 섣달그믐날이면 조상님께 만둣국으로 제를 올리고, 정월대보름에는 들짐승들을 위해 논가에 만두를 내놓던 풍습은 정선 사람들에게 만두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얼마나 각별한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 배부르고 등 따스한 세상이 오면서 정선의 겨울 음식도 그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정선의 특산물인 황기를 듬뿍 넣어 끓인 황기족발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순산을 기원하며 정성껏 준비하던 귀한 보양식이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삶의 지혜와 세월을 뛰어넘는 내리사랑이 담긴 정선의 밥상을 만나본다.
태백산과 소백산이 맞닿은 경북 봉화의 깊은 오지마을. 20년 전 이곳에 둥지를 튼 부부가 있다. 곽진호(73), 김향숙(72) 부부가 도시에서의 삶을 모두 접고 봉화의 산골 마을로 들어온 데는 사연이 있다. 아내 향숙 씨는 2005년 위암으로 네 번의 대수술을 견뎌내야 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아내를 위해 남편 진호 씨는 태권도장을 접고 5년 동안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온갖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남편의 지극정성으로 인해 아내 향숙 씨는 이곳 봉화에서 건강을 회복했다. 해발 800m 고지의 거친 산등성이는 부부에게 보물창고와 같다. 4월까지 눈 이 쌓이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산은 상황버섯과 송근봉 같은 귀한 약재를 아낌없이 내어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부부의 식탁 위에는 사랑이 듬뿍 담긴 보약 밥상이 차려진다. 송근봉을 우려낸 찻물에 말린 뽕잎과 버섯을 얹어 향긋하게 지어낸 영양밥, 능이와 송이의 깊은 향이 배어든 소고기 전골, 여기에 무려 25가지 약재를 넣고 푹 고아 낸 한방 능이백숙은 길고 긴 봉화의 추위를 이겨내는 최고의 밥상이다. 시린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는 봉화 부부의 애틋한 약초 밥상을 만나러 간다.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이곳엔 봄볕보다 더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이가 있다. 올해로 25년째,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도시락 봉사를 하고 있는 원영희 씨(61세)가 그 주인공이다. ‘나누면 더 큰 행복이 돌아온다’는 아버지의 귀한 가르침을 인생의 이정표로 삼아 살아왔다는 원영희 씨, 그녀는 8남매 중 여섯째다.
지금도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함께 먹으며 부모님을 기억하곤 한다. 들깻 가루와 들기름의 고소함이 배어 있는 배추밥은 어머니의 품을 생각나게 하고, 이웃과 나눠 먹기 위해 무와 시래기를 잔뜩 넣고 끓인 코다리조림은 인심 넉넉했던 아버지의 등을 생각나게 한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마음의 유산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8남매의 훈훈한 이야기를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