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눈을 감으면 보이는 풍경...손끝으로 그리움을 빚다

  • 2026.09.30 11:01
  • 1시간전
  • KBS

산업화와 국토 개발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전국 방방곡곡의 수많은 마을이 물 밑으로 잠겼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실향민이 된 사람들에게 고향은 이제 눈을 감아야만 갈 수 있는 아득한 그리움의 땅이다. 하지만 깊은 물길도 차마 갈라놓지 못한 것이 있다. 혀끝과 손끝에 또렷이 각인된 ‘고향의 맛’이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 속에서 그리운 시절을 추억하고 주름진 손끝으로 빚어낸 한 점의 음식에 고향의 풍경을 담아내는 사람들. 고향을 그리며 차려 내는 한 끼의 밥상을 통해, 고향을 잃은 수몰 실향민들의 눈물겨운 애환과 가슴 깊이 간직해 온 고향의 진정한 의미를 조명한다.

4년 전 암이 재발한 이후, 매일같이 화순 적벽을 찾는다는 서덕호 씨. 그의 고향은 화순 11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화순적벽 아래 둥지를 틀었던 마을이다. 하지만 45년 전 동복댐이 들어서면서, 정들었던 집과 마을은 물론 어린 시절의 추억마저 물 밑으로 아득히 잠겨버렸다.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면, 덕호 씨는 옛 마을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냇가에서 물놀이하며 지어 먹던 ‘상춧대어죽’부터 고단했던 타향살이를 다독여주던 ‘버섯메기조림’, 명절 제사상마다 어김없이 올라오던 ‘수수부꾸미’와 구수한 ‘들깨 토란탕’까지. 혀끝에 남아 있는 고향의 기억을 음식으로 차려 내며, 잠시나마 물길 건너 옛 고향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평생 고향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동복댐 수몰 실향민들.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을 향한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마을은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조상들을 모신 선산만은 여전히 그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4년 전 임도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물길을 건너 성묘를 다녀와야 했다는 서덕호 씨(66세). 그 역시 언젠가 부모님 곁에 누워 고향을 바라보고 싶다는데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수몰 실향민들의 애달픈 고향 이야기를 밥상에 차려 낸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이곳에는 수몰이라는 커다란 아픔을 서로 보듬어 안고 만들어 낸 특별한 마을이 있다. 20여 년 전, 용담댐이 들어서며 물 밑으로 잠겨버린 6개 읍·면의 수몰민들이 모여 새로운 삶터로 일구어낸 ‘보한마을’이다. 저마다 고향은 달라도 고향을 잃은 슬픔을 품고 산다는 마음만은 꼭 닮아 있는 사람들. 그래서일까, 이웃의 기쁨도 슬픔도 내 일처럼 나누며 여느 돈독한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틈만 나면 다 함께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눈다는 보한마을 사람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상머리엔 언제나 고향 이야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집 앞 개울가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얼큰하게 끓여낸 ‘어탕수제비’와 ‘피라미 조림’ 그리고 집집마다 인삼 농사를 짓던 시절 즐겨 먹던 ‘인삼백숙’과 ‘인삼김치’까지 이제는 가슴 깊이 묻을 수밖에 없는 그리운 땅이지만, 고향을 그리며 차리는 따스한 한 끼를 통해 우리에게 ‘집’과 ‘고향’이 지닌 참된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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