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 2024.06.11 14:29
  • 2주전
  • KBS

국회 앞 1인 시위에, 탄원서에 지쳐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6살 연이가 선물을 내민다.

막 한글을 뗀 아이가 ‘양육비’라고 꾹꾹 눌러 쓴 메모지를 받아 들고 엄마는 무너졌다.

연이 아빠는 변호사다. 연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잠적했다. 부인과 이혼하지도 않았고, 또 다른 사실혼 관계의 여성과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위장전입은 기본, 재산조회가 어려우니 법원의 양육비 이행 명령도 소용없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에 얼굴이 오른 뒤 본처의 아들이 ‘아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연락하자 그제야 조금씩 양육비를 보내고 있다. 그것도 언제 끊길지 몰라 연이 엄마는 불안하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생기고, 양육비이행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기는 했다. 일부에선 법대로 하면 되지 왜 거리로 나오냐며 마치 돈 몇 푼 가지고 떼쓰는 사람 취급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안 주고 버틸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학생 형제를 홀로 키우고 있는 아빠 박장호(가명) 씨도 처음엔 기대가 컸다. 이행 명령 소송만 하면 이혼한 아이들 엄마가 약속대로 매달 양육비를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주소지를 옮겨 다니며 법원의 송달조차 받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온갖 명품으로 꾸민 엄마의 소셜미디어 사진을 아이들이 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의 한부모가족 아동 빈곤율은 47.7%. 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높다. 9.7%인 덴마크와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양육비를 사적 채무가 아닌 공공 문제로 보고 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의 복지 부담을 키우게 될 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쑥쑥 자라는 아이들은 방치하면서 낮은 출생률과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게 맞냐는 목소리도 높다.

호주에서는 양육비가 제때 지급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국 곳곳 전담 부처의 등록관들이 양육비의 산정과 등록, 추심을 담당한다. 양육비를 안 주면 ‘아동학대’로 보고 최고 14년형까지 형사 처벌하는 미국의 사례도 취재했다. 우리 제도의 구멍이 뭔지,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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