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2,397명, 경상남도 최대 규모이자,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이 수치는 다름 아닌 ‘김해’에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주민들의 수이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오늘, 어느새 대한민국 도시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선 이들과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골목, 김해 외국인 거리에서 이 72시간 관찰기를 써 내려간다.
김해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거리, 고즈넉한 수로왕릉 옆으로 골목 하나만 돌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주말마다 각국의 언어와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넘치는 김해시 동상동. 우즈베키스탄 식당과 방글라데시 마트, 베트남 채소 가게, 네팔 정육점 등 파는 물건도 사는 사람도 가지각색이다.
한때 김해 사람들로 북적이던 원도심. 신도시가 들어서며 비어가기 시작한 골목은 이제 새로운 주민들을 맞이했다. 저마다의 꿈을 안고 일자리를 찾아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날아든 사람들. 비어가던 거리는 다른 언어들로 채워졌다.
2살 때부터 한국에 살았다는 13살 알리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음식인 볶음밥 ‘오시’는 물론, 온갖 식재료와 거리를 소개하느라 바쁘다. 유창한 한국어로 동네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알리의 발걸음을 따라가자, 국경 없는 지구촌 광장이 펼쳐진다.
근로자들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할 일요일. 하지만 거리는 게으를 틈도 없이 이른 아침부터 활기차게 깨어난다. 일주일 치 장을 보고, 머리를 자르고, 생활용품을 사는 것은 기본.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은행과 지원센터 방문도 빼놓을 수 없다.
바쁘디바쁜 이들의 일요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어 수업이 끝난 뒤, 친구를 기다리는 짧은 틈에도 교재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네팔 청년 라젠드라 씨. 한국어를 잘해야 비자를 연장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으며, 언젠가는 가족과 함께 살아갈 기회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매주 찾아오는 일요일의 숙제는 휴식을 저축해서라도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것. ‘미래’라는 선명한 답을 얻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다.
부족한 월급에도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 아이의 교육을 걱정하는 부모,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 공부하는 청년. 인생의 대부분을 이미 이곳에서 보내온 이들과 같이 이 거리에서 삶은 공평하게 흐른다. 한참 장난기 넘치는 4살 아들의 손을 잡고 바루크 씨는 육아하랴, 일하랴 바쁜 와중에도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식당을 찾았다.
시장 한편, 밤늦은 시간까지 울려 퍼지는 다채로운 외국어들. 문수호 씨는 67세의 나이에도 러시아어, 영어, 네팔어 등 다양한 언어로 손님을 잡느라 바쁘다. 낯선 언어가 오가는 풍경은 달라졌을지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쓰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이 거리는 그렇게 저마다의 삶을 품어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 거리는 잠시 거쳐 가는 정거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침내 만난 정착지, 또 하나의 고향이 되어간다. 오늘도 국경을 넘어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들, 이들의 오늘이 우리가 마주할 내일의 김해를 만들어 가고 있다.
726회 같이 사는 김에 - 김해 외국인 거리 72시간은 6월 8일 월요일 저녁 8시 30분 KBS 2TV에서 방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