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여왕님 나가신다” 여성 최초 국내 경마계 최정상! ‘경마의 여왕’ 김혜선

  • 2025.03.28 17:40
  • 3일전
  • KBS

요즘 세상에 여자라고 이루지 못할 것이 뭐가 있으랴 싶지만, 세상 곳곳엔 여전히 깨기 힘든 유리천장들이 존재한다. 성별을 불문하고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기수들의 세계 역시 그중 한 곳. 그래서 남성 기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경마계에서 그들과의 체력과 근력 차이를 극복하고 자타공인 최고의 기수로 우뚝 선 한 여자가 있다. ‘경마의 여왕’이란 별명을 가진 김혜선 씨(3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09년 데뷔 후 지금까지 쌓은 승수만도 430승이 넘는 혜선 씨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그간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우수마들이 겨루는 ‘대상 경주’에서 열 차례나 우승했고 지난 연말엔 한국 경마 최고의 무대로 뽑히는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1922년 한국 경마가 출범한 이후 여성 기수가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 10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급기야 지난 3월 1일엔 국내 여성 기수 최초로 두바이에서 열린 ‘알 막툼 클래식'에 출전했다.

8살 연하의 후배 기수, 박재이(29) 씨와 결혼해 다섯 살배기 아들 찬이를 둔 엄마이기도 한 혜선 씨. 부부가 모두 현역 기수이다 보니 아이를 인천에 계신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있다. 그래서 마음속에 늘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여성 기수로서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벽을 허물고 끝없이 도전하는 혜선 씨의 뜨거운 질주를 담아본다.

새벽 5시가 되면 알람 소리를 듣지 않고도 절로 눈이 떠진다. 부리나케 준비를 마치고 찾아가는 곳은 부산 경마 공원의 마방.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경주마들을 훈련 시키는 것으로 혜선 씨의 아침이 시작된 다.

2009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17년째 이어지고 있는 기수로서의 일상이다. 키 150㎝의 단신 기수인 혜선 씨. 어릴 적부터 작은 키는 늘 걸림돌이었다. 좋아했던 핸드볼도, 연예 기획사를 찾아다니며 오디션을 볼 정도로 푹 빠졌던 댄스도, 늘 키가 문제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경마 기수’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키가 작으면 유리하다는 얘기에 망설임 없이 기수의 길로 들어섰다.

2년간의 교육생 생활을 마치고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혜선 씨의 기수 생활은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성별 구분 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 경마이기에 체력도 근력도 남성 기수들에 비해 부족한 혜선 씨는 늘 불리한 위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차이는 기회의 차이로 이어져, 혜선 씨는 좋은 말을 탈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혜선 씨는 타고난 승부사 기질과 성실함,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여성 최초 대상경주 우승(2017년), 여성 최초 400승 돌파(2024년), 여성 최초 그랑프리(G1) 대상경주 우승(2024) 등의 대기록을 쌓아 올렸다. 오른쪽 다리의 십자인대가 두 번이나 파열되고, 발목인대가 끊어지는 등 부상이 친구처럼 따라다녔지만, 이 또한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혜선 씨. 지금 그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정상 기수다.

지난 3월 1일 두바이 메이단 경마장에서 열린 ‘알 막툼 클래식’에 출전한 혜선 씨. 4월 5일 펼쳐질 ‘두바이 월드컵’ 예선전 중 하나로, 우승하면 본선에 자동 진출하는 대회다.

1,200만 달러(약 172억 원)의 상금이 걸려 있는 ‘두바이 월드컵’은 세계 최고로 꼽히는 경마대회. 베팅이 금지돼 있어 오로지 상금을 걸고 세계적인 명마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 기수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올해 국내 기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참가한 혜선 씨는 이번에도 역시 ‘국내 여성 기수 최초’로 두바이 대회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함께 호흡을 맞춘 말은 혜선 씨의 단짝 ‘글로벌히트’.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던 말이었지만 혜선 씨를 만나면서 눈부신 비상을 하게 된 히트는 혜선 씨와 함께 국내 대상경주 7개를 휩쓸고 이번에 두바이까지 출전하게 됐다.

히트 역시 국산 토종마로서 처음 출전한 의미 있는 도전이다. 지난 1월 치러진 1차전에선 8위에 머물렀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 2차전에선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혜선 씨. 높아만 보였던 세계의 벽을 곧 허물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대회였다.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혜선 씨에게도 언젠가는 내리막이 찾아오게 되는 법. 남자 기수보다 수명이 짧은 여자 기수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던 혜선 씨는 향후 조교사로서 인생 2막에 도전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틈틈이 교육을 받는 중이다. ‘경마의 여왕’으로 우뚝 선 혜선 씨의 가슴 뜨거운 여정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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