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면 요리, 살림이면 살림. 뭐든 똑소리 나게 해내는 열다섯 도연이. 동네 어디를 가든 칭찬이 자자한 소문난 똑순이에, 시장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린아이가 혼자 시장을 다니며 장을 봤으니,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다. 만나는 상인들마다 안부를 물으며 인사하기 바쁘다 보니, 몇 년째 연을 쌓아 온 단골 가게도 한둘이 아니다.
덕분에 넉살 좋게 나물 한 줌 더 얻고, 귀여운 흥정은 기본이라는 도연이. 사실 어린 나이에 똑순이 살림꾼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벌써 몇 년째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 또래들은 엄마 손을 잡고 여기저기 나들이를 다닐 때, 도연이는 엄마의 약을 타러 병원에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도 엄마를 위해 좋은 약초와 산나물을 찾겠다고 산을 오르고, 집안일을 도맡으며 엄마의 보호자 노릇을 하는 도연이. 열다섯 도연이의 하루는 오늘도 엄마 걱정으로 가득하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결혼 생활. 여러 갈등 끝에 부부는 도연이가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이별하게 됐다. 엄마는 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신경치료를 위해 찾았던 치과에서 의료사고까지 겪게 되며 더 악몽 같은 날들이 시작됐다. 치료 부위에 고름이 차고 염증이 생기는 등 상태가 점점 악화하면서, 7차례의 수술과 법정 다툼까지 거쳤다.
하지만 개인이 의료 과실을 입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어지는 싸움과 수차례의 수술, 거기다 계속된 통증으로 일상생활마저 힘들어지면서 엄마는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이후 외출도 쉽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고, 약기운에 누워 지내는 날들이 계속됐다. 엄마는 그렇게 몇 년 넘게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그랬던 엄마가 최근 마음을 다잡고,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매일 곁에서 엄마를 챙기고, 생활에 보탬이 되겠다며 벌써 아르바이트까지 알아보고 나선 도연이 덕분이다.
자신 때문에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속 깊은 딸에게 언제까지 짐이 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업도 시작하고, 식당 아르바이트도 찾아 나서며 일을 시작한 엄마. 이제라도 못다 한 엄마 노릇을 해주고 싶어 다시 일어서는 중이다.
엄마의 우울증은 점점 심해지고, 살던 집에서도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하자, 모녀는 결국 이모와 할머니가 지내는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나아지고, 보증금이 마련되면 나가야지 했던 게 벌써 6년째다. 욕실 옆 작은방 한 칸이 엄마와 도연이의 공간이다.
이모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몇 년째 함께 지내다 보니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주셨던 할머니마저 지난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시면서 병원에 계시는 상황이다. 도연이의 걱정이 자꾸만 늘어간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놀기 바쁘고, 학원에 다니느라 바쁠 시기. 도연이는 학원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꿈만큼은 잃지 않았던 도연이. 먹고살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는 도연이의 첫 번째 꿈은 요리사였고, 아픈 엄마를 위해 신약 개발 연구원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엄마를 돕기 위한 꿈이었을 뿐, 최근 진짜 하고 일을 찾았다는 도연이.
그림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하던 도연이는 보석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미술 학원은 꿈도 꾸기 힘든 형편이지만, 집에서도 버스에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워가는 도연이. 도연이에게 꿈은 힘든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가장 큰 이정표다.
*이후 554회 ‘우리 할매, 우리 형’ (2026년 4월 18일 방송) 후기가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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