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팬데믹, 기후 위기, 빈곤, 난민, 자연재해 등 오늘날 우리는 국제사회의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 살고 있다. 그와 함께 국가 간 연대와 협력의 범위가 확장되고, 공적개발원조(ODA)의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다. 11월 24일 방송되는 에서는 11월 25일 개발 협력의 날을 맞아 그동안 진행됐던 국제협력의 주요 사례를 알아보고, 글로벌 복합 위기 시대에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1세대 ODA 전문가 이욱헌 전 KOICA 이라크사무소장과 함께 이야기 나눠본다.
시리아의 세 살 아이 ‘아일란 쿠르디’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피난 중 뗏목이 난파되어 튀르키예 해변에서 발견됐 다.
2015년 당시 난민 수용을 거부하던 유럽은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난민 수용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이 시리아 난민 수용을 결정했다. 이때만 해도 먼 나라의 일이라고 느껴졌던 난민 문제는 3년 뒤 우리나라에도 발생하게 된 다.
2018년 예멘 난민 입국 허가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연사는 “다른 나라를 돕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는 생각이 국제개발협력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개발협력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공적개발원조(ODA)이다. 공적개발원조를 뜻하는 ODA는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약자로, 정부나 공공기관과 같은 공적 기관이 세금 같은 공적 재원으로 개도국의 발전과 빈곤 퇴치를 위해 시행하는 다양한 원조 활동을 의미한다.
전 세계 ODA 역사에서 한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미국과 유엔을 중심으로 많은 원조를 받았다. 1945년부터 1995년까지 50년간 받은 원조 규모는 약 127억 달러로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무려 80조 원에 달한다. 한국은 1963년 첫 대외 원조를 시발점으로 다른 나라를 돕기 시작했다. 이후 1987년 개도국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 지원을 위한 정책기금인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설치되고 1991년에는 대외무상원조 전담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설립되었다. 대외원조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 채널이 구축된 것이다.
코이카가 설립된 후 20년도 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다. 개발원조위원회인 DAC는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의 약자로 공적개발원조를 논의하는 OECD 기구로 선진국 대열에서 원조하는 나라만 가입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2009년 11월 25일 24번째 회원국으로 승인되었는데, 이는 “전 세계 ODA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라고 연사는 설명했다. 실제로 최빈국 출신으로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욱헌 연사는 ODA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이라크와 베트남 등 ODA 최일선에서 활동했다. 그는 “미 국무부로부터 대한민국도 재건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운명처럼 이라크에 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종전 선언 후 10일 만인 2003년 5월 11일에 바그다드에 도착한 연사가 바라본 당시 이라크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전쟁은 끝났으나 바그다드 교도소의 수용자 수만 명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치안 악화로 폭탄 테러가 매일같이 일어나고,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연사 역시 “외부로 나갈 때는 방탄복과 권총을 차고 나가야 했다”며 당시의 생생한 긴장감을 담은 사진과 총기허가증을 공개했다.
여권조차 발급받기 어려운 무정부 상태의 이라크에서 미군 퇴역 대령의 도움을 받아 간이 여권을 만들어 겨우 진행된 이라크 공무원의 한국 연수 프로그램은 좋은 반응을 이끌며 이라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후 20여 년 동안 5,000여 명의 연수 인원을 배출해 한국과 이라크 관계에 있어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연사가 직접 겪은 또 다른 ODA 현장으로는 약 5년간 근무했던 베트남이 있다. 베트남전 당시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던 중부 지역에서 활동했던 연사는 지역 주민들이 가진 과거의 상처를 달래줄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한 끝에 코이카 예산 200만 달러를 투입하여 베트남 중부 지역 5개 성에 초등학교 40개를 설립했다. 또한, 고등교육시설 역시 지원했는데, 베트남의 응에안성 빈(Vinh)시에 당시 500만 달러를 투입해 2000년 12월 직업훈련원인 ‘한베산업기술대학’을 지었고 이는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술 학교이자 ‘빈시의 명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최근 베트남에는 우리나라 ODA 무상 원조 역사상 최대 규모인 3,500만 달러를 투입하여 한국의 과학기술연구원, KIST를 벤치마킹한 V-KIST가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이 원조를 받은 경험과 축적된 개발 경험을 더해 개도국이 가장 원하는 형태로 지원한 사례로, ODA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다.
국제사회는 전쟁과 빈곤, 재난뿐 아니라 다양한 논의와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다양한 이슈들이 산재해 있다. 유엔은 2000년 9월 열린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 세계 189개국 정상들이 채택한 밀레니엄 선언을 통해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를 수립했다. ‘MDGs’의 핵심 목표는 2015년까지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고 2025년까지 절대적 빈곤을 종식하는 것이다. 그 후 2015년에 발표된 것이 바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로, MDGs가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포함하여 17개의 목표와 169개의 세부 목표를 선정했다.
하지만 SDGs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시기에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다. 그 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두 개의 전쟁이 이어지며 이러한 국제 환경으로 인해 SDGs가 본격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한국의 ODA 목표 역시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 높아지며, 중미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 건조 회랑(Dry corridor) 지역의 식량난과 빈곤을 겪는 주민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2022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지역에 약 3,700㎡의 시설 원예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한민국의 전문가를 파견하여 기술을 전수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현지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연사는 “하루에 2.15달러라는, 3천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절대 빈곤 인구가 세계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약 7억 명이며 5살이 되기도 전에 사망하는 아이들이 6초에 한 명씩 발생하고 있다”며 지구촌이 현재 겪고 있는 현실을 전했다.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은 수원국(受援國) 출신으로서 대한민국은 ODA의 중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지구촌의 상생 및 공동 번영을 위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품격 있는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글로벌 복합 위기 시대, 한국의 역할은?’은 11월 24일(일)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후에는 KBS홈페이지(www.kbs.co.kr)와 wavve, 유튜브 KBS교양, KBS다큐에서 다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