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KBS VJ와 ‘내일로’ 여행 중이던 여대생들의 약속. 스쳐간 인연에 담긴 온기, 사람을 향한 희망과 낭만을 일깨우는 약속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구 안동역을 찾았다. 그와 함께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저마다의 약속, 소중한 인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안동으로 335번째 여정을 떠나본다.
내륙 도시 안동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중앙신시장. 이곳의 명물은 다름 아닌 문어다. 안동이 전국 문어 소비량의 30%를 차지할 만큼 안동과 문어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잡아끄는 문어골목의 대왕 문어들. 문어의 ‘문’자가 ‘글월 문文’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양반의 고장 안동 제수상에서 빠질 수 없었다는데. 조금 더 걸어보면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는 전집을 만난다. 저마다 늘어놓은, 다소 생소한 ‘다시마전’ 역시 제수 음식. 꼬들꼬들한 식감이 매력적인 안동 제수상의 필수 음식들 맛보며 동네를 배워간다.
대마 특구 안동에서 ‘햄프씨드막걸리’ 맛 젤라토를 만드는 강현구(35) 씨를 만났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소년이 자라 만드는 법을 배웠고, 젤라토 가게가 없던 고향에 그 맛을 보이고 싶었단다. 나아가 안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동의 먹거리도 소개하고 싶었다는 ‘젤라토’에 진심인 청년. 개발한 메뉴가 자그마치 300여 개다. 첨가물 하나 없이 안동에서 나는 좋은 재료만을 넣어 직접 만든다는데. 지역 제유소에서 생산한 검은 깨로 만든 고소한 젤라토도 인기다. 아직 만들고 싶은 맛이 많다는 현구 씨를 만나 ‘안동’이기에 할 수 있었던 달콤한 성공 이야기 들어봤다.
선비의 고장 안동에서 ‘선비문화’를 테마로 8월 9일부터 17일까지 축제를 펼쳤다. 동네지기도 ‘조선의 여름나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쿨 트래디션’이 한창인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를 찾았다. 안동시와 한국정신문화재단은 축제 곳곳에 선조들의 지혜를 활용해 물놀이와 천문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현대판 ‘조선의 여름나기’를 즐겼다.
경북 최대의 곡창지대, 풍산평야. 평야의 풍족한 곡식과 낙동강에서 흘러온 맑고 깨끗한 물로 안동에서는 대대로 가양주를 만들어 손님을 모셨다. 풍산에서 반남 박 씨의 가양주를 잇는 박재서(90) 명인 가족을 만났다. 순곡주 제조 금지령으로 인해 술을 빚을 수 없었던 시기.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전통, 가양주를 지켜낸 박재서 명인. 그의 아들 박찬관(68) 씨는 2대째 술을 빚으며 누룩의 냄새를 없앴고. 3대 박춘우(38) 씨는 미생물학을 공부하며 오크통 숙성법을 개발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것, 거듭 나아가는 안동소주를 맛본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한옥. 그 자체로도 기품있는 이곳에 들어서면 ‘체덕지’ 건강한 마음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전통의 지혜를 잇고자 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벽면의 안동포는 안동의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강요하는 이 없지만 이곳에 들어서는 사람은 모두 소곤소곤 대화를 이으며 이 공간의 분위기를 지킨다. 고요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쉬어가며 잠시동안 느슨해질 수 있는 공간. 동네 한 바퀴 돌던 동네지기도 잠시 멈춰 걸음의 의미를 돌아봤다.
머리에 쟁반을 이고 천 원짜리 보리밥을 배달하며 젊은 날을 보낸 안명자(73) 씨. 48년 내공이 쌓이는 동안 밥값을 조금씩 올렸다지만 여전히 저렴한 6천 원에 11가지 반찬을 내어준다. 어렵던 시절 가게를 찾아주던 손님들에게 보답하고 싶어 이 가격을 유지하는 중이란다. 싸다고 해서 남의 손을 빌리거나, 무엇 하나 대충 만들지 않는다.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고장 난 허리로 발품을 팔며 시장도 보고, 보리밥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된장도 직접 담근단다. 통통한 안동 간고등어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인심을 가진 명자 씨 만나 든든한 한 끼 맛봤다.
안동은 물길과 함께 이어지고 흐르는 도시다. 낙동강 본류와 내성천이 휘돌아 흐르며, 강은 산과 마을, 사람과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 붙인다. 그 물길 위에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 보행교, 월영교가 놓여 있다. 길이 약 387미터. 안동호 위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안동 물길의 풍경을 한눈에 담게 해주는 월영교를 걸어본다.
전주 류씨 집성촌 무실마을에 들어서면 독립운동가 수애 류진걸 선생이 지은 한옥이 방문객을 반긴다. 1939년 지어진 이 집을 지키고 있는 류효진(62), 문정현(58) 부부는 1999년부터 이곳을 고택 숙소로 운영하며 단체 손님을 대상으로 헛제삿밥을 내어주고 있다.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제사 음식과 같은 재료로 차려 먹는다 하여 지어진 이름 ‘헛제삿밥’. 집안 대대로 내려온 씨간장, 간수를 뺀 소금으로 그 깊은 맛을 낸다. 생강의 알싸함이 살아 있는 안동식혜 한 모금에도 그들의 시간과 전통이 배어 있다. 이 밥상엔 단지 음식이 오르지 않는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 지켜야 한다는 다짐, 그 모든 것이 담긴 밥상이 헛제사밥을 맛봤다.
안동을 대표하는 캐릭터, . 고 권정생 선생의 유작으로 2008년 출간했다. 산불 속에서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까투리의 모성애를 담은 이야기로 2025년에도 사랑받고 있는 캐릭터다.
안동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놀이기구와 물놀이장을 ‘엄마까투리’ 테마로 조성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버킷에 더위를 잊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논다. 문화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이곳은 지난 8월 1일부터 17일까지 임시 개장하여 무더운 날씨,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더욱 보완하여 체험관과 야영장 등의 시설과 함께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잊혀 가는 것을 끝내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들이 지켜낸 시간의 조각들을 따라 걷는 안동의 이야기는 9월 6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편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