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의 감성을 함께 간직한 나라 조지아. 그중에서도 ‘조지아의 부산’이라고 불리는 항구 도시 바투미에서 세계여행 중인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직업도 참 다양했던 여섯 식구는 그만큼 여행에서 맡은 역할도 제각각이다. 평생 철도 공무원으로 일해온 아버지 성진영(64) 씨는 늘 가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울타리가 되어주고 한복을 지어온 어머니 김재연(62) 씨와 패션 디자이너였던 작은딸 성정아(33) 씨는 이제 식구들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요리 담당이다. 건축가였던 큰딸 성지아(36) 씨는 늘 여행의 큰 그림과 동선을 짜는 역할을 맡고 스페인어를 전공해 물류회사에서 일했던 큰사위 김중원(36) 씨는 능숙한 외국어로 통역을 책임지고 있다. 웹툰 작가였던 작은사위 김민혁(35) 씨는 언제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준다. 그렇게 여섯 식구가 모이면 못 해낼 것이 없는 천하무적이 된다.
바닷가에서 캠핑하기로 한 날. 일사천리로 텐트 세 동을 치고, 부부끼리 나뉘어 들어가 잠을 청한다. 밤중에 갑자기 폭풍우가 치더니, 가족들이 하나둘씩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부모님이 나오질 않는다.
언제나 일심동체가 되어 다니는 여섯 식구지만, 지아 씨와 중원 씨 부부가 웬일로 동선을 벗어나 함께 낯선 동네의 길거리를 거닐며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우연히 김밥집을 발견하고, 신기해하며 자리를 잡는 두 사람. 서로 참치김밥을 먹여주며, 그동안 가족들 앞이라 숨겨왔던 애정 표현도 나눈다. 결혼 3년 차 신혼부부인 두 사람의 인연은 13년 전 산티아고에서 시작되었다.
어머니 재연 씨, 동생 정아 씨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지아 씨. 세 모녀는 길 위에서 스페인어와 영어를 아주 잘하고, 유난히 다정한 한국 청년을 만났다. 한 달간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세 모녀에게 큰 힘이 되어준 청년. 그리고 9년 뒤, 그 청년은 지아 씨의 남편이자 이 집안의 맏사위가 됐다. 중원 씨와 결혼을 준비하던 2018년, 지아 씨는 혈액암 선고를 받았지만, 암 선고는 결혼 결정에 조금의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지아 씨가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한결같이 곁을 지켜준 중원 씨. 두 사람은 함께 800km 순례길을 걸었던 것처럼 평생 손잡고 인생의 길을 같이 걷기로 했다.
한창 경력을 쌓고, 돈을 모아야 할 시기에 1년이라는 시간을 여행에 쏟고 있는 부부. 가끔은 이대로 괜찮을까 생각하지만, 남들과는 삶의 지향점이 달랐기에 떠나올 수 있었던 여행이다. 누가 뭐라든, 저들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쌓아가고 있는 두 사람.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시간이 더 중요한 여정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조지아를 떠나, 열다섯 번째 나라인 알바니아로 이동하는 날. 가족들은 아침부터 분주히 짐을 싼다. 여행 내내 수없이 숙소를 옮겨 다닌 덕에
이제 짐 싸는 솜씨만큼은 모두 베테랑이다. 그중 유난히 오래 걸리는 사람이 있다. 가족 중 짐이 가장 많은 아버지 진영 씨다. 배낭을 열어 보니 온갖 호텔에서 받은 일회용 세면도구와 식당에서 챙긴 휴지와 물티슈, 어디서 받았는지 모를 커피와 설탕까지 한가득이다. 버리라는 가족들의 성화에도 진영 씨의 고집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여행 내내 가장 ‘말썽꾸러기’라는 진영 씨. 캠프파이어가 금지된 캠핑장에서 갑자기 불을 피우고, 지나가는 뱀에게 돌을 던지는 등 돌발행동으로 종종 가족들을 난감하게 한다. ‘늘 다정하고 헌신적이던 아빠가 이렇게 고집이 센 사람이었나?’라며 두 딸은 처음엔 많이 놀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모든 돌발행동의 중심엔 늘 ‘가족’이 있다는 것을. 추위에 약한 아내를 위해 캠핑장에서 불을 피우고, 뱀을 무서워하는 딸들을 위해 돌을 던졌던 진영 씨. 두 딸은 낯선 땅에서 비로소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의 지난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갈등도 많고, 많이 부딪혔지만 가족은 ‘지지고 볶고 싸우며’ 더욱 단단해져 가고 있다. 여섯 식구가 손을 꼭 잡고 걷는 지구 한 바퀴. 이 여정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새롭게 발견하는 ‘가족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복한 가족’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여섯 식구의 특별한 여정을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