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물의 계절이 시작됐다. 강과 계곡, 저수지가 내어주는 한없이 넉넉한 밥상이 공개된다. 물길 따라 만나는 일품(一品) 여름 맛을 맛본다.
초여름 햇살이 뜨거워지면 땅 위의 물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저수지에는 물이 차오르고, 산속 계곡은 차가운 물줄기에 힘을 더하고, 강은 제 몸을 불리면서 생명을 키우고 밥상을 채워준다. 이제는 섬진강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귀한 재첩으로 광양 중도마을만의 특별한 재첩 한 상을 차려낸다.
영양 수비 계곡에서는 물오른 꺽지와 다슬기로 여름철 기운을 북돋우고, 주남저수지와 맞닿은 창원에선 옛 맛 그대로의 시골 밥상이 행복을 일깨운다. 여름의 길목, 저수지와 계곡, 강을 따라가며 물길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 계절 가장 활기찬 제철의 맛을 만난다.
섬진강에 둘러싸여 ‘육지 속 섬’이라고 불렸던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중도마을로 향한다. 여름의 길목, 물이 불어난 섬진강에선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어선이 강 한가운데를 빙글빙글 돌면서 그물 가득 잡아 올리자, 어민들이 ‘검은 보석’이라고 부르는 재첩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광우 씨(61세)는 만조가 되어 강물이 불어나면 배를 타고 나가고, 또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는 간조 때는 전통 도구인 ‘거랭이’를 끌고 나가 부지런히 재첩을 캔다.
장마가 오기 전, 6월에 가장 맛있다는 섬진강 재첩은 그 자체에 간이 배어 있어서 조미료를 쓰지 않아도 감칠맛이 난다. 뽀얀 국물에 담백함과 시원함이 가득한 재첩국. 평생 재첩잡이로 살아온 이광우 씨는 재첩국을 더 맛있게 먹는 비법이 있다며 알려준다. 그냥 먹어도, 뜨거운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는 재첩회무침. 알알이 재첩의 쫄깃함이 살아있는 재첩전까지 풍성한 섬진강 재첩 한 상을 차린다.
철철이 산에서 나는 나물로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만들게 됐다는 고사리장아찌는 아내 정미경 씨(58세)만의 특별한 별미다. 큰 병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게 집밥 덕분이었다는 부부. 그 행복한 밥상에서 이 계절의 참맛을 만난다.
밤에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날이 밝으면 계곡 맑은 물이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더하는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자연의 품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곳에 유유자적 사는 부부가 있다. 산 깊은 계곡에선 여름마다 자연이 먼저 밥상을 차린다. 영양 사람들이 ‘골부리’라 부르는 다슬기가 줍기만 하면 될 정도로 지천에 깔려 있고, 1급수에 산다는 꺽지는 낚싯대 끝에 손맛을 전한다.
권한동 씨(64세)는 가족들과 캠핑을 다니다가 영양 수비면의 계곡에 반해 13년 전 이곳으로 귀촌했다. 직접 집을 지어 장작을 패고 텃밭을 일구고, 하나하나 배우고 고치고 만들어가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알아가는 게 산골살이의 매력이란다. 이맘때면 낚시 좋아하는 남편은 물가로 나가 꺽지를 잡는 재미에 빠져 산다. 아내 성숙현 씨(64세)는 보일러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밤하늘 별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빠진다.
마당과 계곡에 가득한 돌배나무에서 돌배를 따서 돌배청과 돌배 고추장을 담근다. 여기에 남편이 낚시한 꺽지에 고추장 듬뿍 넣어 만든 꺽지조림은 부부가 즐겨 먹는 초여름 별미다. 또 경상북도 내륙지방에서 여름 보양식으로 먹는다는 골부리국은 천연 피로회복제란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물길, 부부가 반한 자연이 차려 낸 산골 계곡의 청량한 밥상을 전한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철새들의 고향으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곁에는 물과 논이 함께 숨 쉬는 들녘이 펼쳐진다. 저수지 덕분에 가뭄 걱정 없이 대대로 농사를 지어 온 이곳에서 토종벼를 키우고 있는 우봉희 씨(53세)는 400년 넘게 대를 이어 땅을 일구는 농사꾼 집안의 후손이다. 토종쌀은 밥맛이 특별하단다. 동네 어르신들이 “이것이 옛날 우리 밥맛”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봉희 씨의 쌀에는 옛 밥맛이 담겨 있다. 아내 정선혜 씨(53세)는 그 토종 쌀로 술을 빚으며 집안의 맛을 이어간다.
주남저수지를 품은 창원의 들녘은 부부의 밥상에도 깊은 맛을 전한다. 밀양이 고향인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해준 ‘집장’은 보리와 호밀이 들어가 쿰쿰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낸다. 이 집장으로 자작하게 끓인 찌개는 밥에 비벼 먹거나 쌈에 곁들이면 초여름 입맛을 돋우는 별미가 된다. 여기에 향긋한 방앗잎으로 초여름의 풋풋함을 더하는 방아전까지. 점점 사라져가는 토종벼를 지키며 살아가는 농사꾼 부부의 밥상엔 매일 먹고 싶은 건강한 계절의 맛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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