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고 지칠쏘냐? 이럴 때일수록 든든히 챙겨 먹어야 하는 게 여름나기의 생존 전략이다.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게 어디 음식뿐이랴? 곁에서 시원한 바람이 되고 편안한 그늘이 되는 보양식 같은 존재를 만난다.
혹서기, 일 년 중 가장 혹독하게 더운 때다. 바야흐로 일손을 놓고 잠시 쉬는 시기, 대부분 휴가를 준비한다. 뜨거운 태양이 곡식과 과일을 익히는 계절, 옛 선조들도 이때가 되면 잠시 망중한을 즐겼다.
그러나 모두 덥다고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작열하는 햇볕 아래서 연잎을 따고, 1,300℃에 달하는 불 앞에서 쇠를 녹여야 하는 이들이 있다. 덥고 힘들다고 멈출 수 없는 일상의 노동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 그들을 위로해 주는 건 위로를 담아 마음으로 차린 한 상이다.
소금 땀을 흘리는 유기 장인에겐 ‘특급 물김치’가, 무거운 장비를 매고 바다로 뛰어드는 특전사 예비군들에겐 ‘오리문어탕’이, 뙤약볕에서 연잎을 따는 연잎 농부에겐 ‘연잎단호박오겹살찜’이 몸과 마음을 만져주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이번 에서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장에서 지혜를 모아 차린 특별한 음식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삶의 진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에 드넓게 펼쳐진 연밭. 연잎 한 장을 따기 위해선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고역의 일터에서 자신의 키만 한 연잎을 따는 김형록 씨(75세). 연잎은 하필 삼복더위가 절정인 7월 중순부터 8월에 따야 한다. 이 시기의 연잎이 가장 크고 그 향이 진하기 때문이다. 서 있기만 해도 아찔한 더위 속에서 남편 김형록 씨와 손발 맞춰가며 일을 하는 단짝은 아내 황향순 씨(69세)다. 두 사람은 푹푹 찌는 더위에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도 얼굴 찌푸리지 않고 재미나게 일을 한다.
일 벌이는 거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황향순 씨에게는 10여 년 전, 연뿌리 세 개로 시작한 연잎 농사가 가장 행복한 일이란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는 음식에 향을 입히는 연을 키우는 일이 즐겁다. 그에겐 특별한 요리 선생님이 있다. 지역 음식을 개발하는 현숙이 씨(46세)는 황향순 씨와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나 지금은 어느 모녀보다 가까운 사이가 됐다.
무더위와 싸워야 하는 부부를 위해 현숙이 씨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골고루 담은 한 상을 준비한다. 부부가 정성껏 딴 널찍한 연잎에 단호박과 오겹살을 가득 싸서 쪄낸 별미, ‘연잎단호박오겹살찜.’ 치마만한 연잎 속에 소중한 이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1,300℃에 달하는 시뻘건 쇳물 앞을 지키어 서 있는 충청남도 아산시의 전희수 씨(72세). 그는 우리의 전통 방짜유기를 만드는 장인이다. 그의 특기는 전통악기인 징 만들기. 쇠의 성질을 알아 소리를 알맞게 잡는 데까지 10여 년이 걸리는 고된 작업이다. 쇠를 달구고 달궈진 쇳덩어리를 가마 속에서 돌리는 등 무려 열 개의 공정을 거쳐야 강도 높은 방짜유기가 완성된다.
하루 종일 불볕더위보다 더한 가마의 열기와 사투를 벌여도 집에 와서는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는 전희수 씨. 어느덧 방짜유기 장인 54년 차인 그의 인생에 숨은 공로자는 아내 배달영 씨(71세)다.
새벽 세 시부터 일을 시작하니 에너지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닌 남편을 위해 배달영 씨가 준비한 음료는 ‘수박미숫가루화채’다. 미숫가루에 수박과 얼음을 동동 띄워 낸 한 그릇은 더위를 한풀 식혀줄 뿐만 아니라 영양까지 채워준다. 오이의 시원한 맛과 미나리의 향긋함을 살려 담가 낸 ‘미나리고추오이물김치’는 비처럼 땀을 흘리는 남편의 모습에 특별히 고안한 메뉴인데, 이 요리에는 더위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진 남편을 향한 아내의 뜨거운 존경이 담겨있다.
천혜의 자연에 한때는 관광객들이 꾸준히 드나들었던 섬, 다보도. 이제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이곳엔 파도에 휩쓸려 온 쓰레기들만이 하나, 둘 쌓여 가고 있다. 바닷속에서 나오는 온갖 쓰레기와 폐그물, 쇠 파이프 등을 치우다 보면 마음마저 정화된다는 사람들. 지난 30년, 보령시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열정만은 현역 때와 다르지 않은 특전사 예비군들은 바다를 사랑하고 고향을 아끼는 마음에, 무더위에도 기꺼이 바다로 향한다. 고된 작업도 묵묵히 해내는 이유는 남편의 수고를 알아주는 아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아내가 특전사나 다름없다며 웃음꽃을 피우는 보령의 사나이들. 역전의 용사들을 위해 아내들은 오리, 문어에 전복까지 몸에 좋은 것들을 가득 담아 팔팔 끓여낸 ‘오리문어해신탕’을 선보인다. 한 상 가득 몸에 좋은 것들로 담아낸 보양 밥상 속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자부심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