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 2026.08.13 10:05
  • 2시간전
  • KBS

일 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맛이 있다. 먼바다에서 살다 산란을 위해 신안 앞바다로 돌아오는 병어와 덕자,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붉고 달콤하게 익어가는 화순의 복숭아, 바다에서 자라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오는 경호강의 은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맛이 꽉 차는 시기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순간도 길지 않기에 더욱 기다려지는 여름의 맛이다. 한철의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고 자연이 내어준 귀한 맛을 밥상에 올리는 사람들. 지금이 아니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여름 한 철의 특별한 밥상을 소개한다.

여름이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임자면 앞바다에는 제철 병어를 찾아 이른 새벽부터 배들이 오간다. 먼바다에 살다 이맘때 산란을 위해 신안 앞바다로 오는 병어는 어획량이 줄면서 ‘금병어’로 불릴 정도다. 병어와 닮았지만, 몸집이 더 크고 짙은 지느러미를 가진 덕대, 이른바 ‘덕자’도 귀한 생선이다.

닻자망으로 병어를 잡는 김만수(74세) 선장과 강경남(60세) 선주는 선원들과 함께 바다를 누비며 여름 생선의 여왕이라 불리는 병어와 덕자를 건져 올린다. 밤샘 조업을 마치고 허기를 달래는 첫 끼는 병어회와 병어구이, 그리고 덕자찜. 고된 작업을 위로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한 끼다.

신안군 지도읍 사람들에게도 병어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 귀한 생선이다. 담백한 병어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병어 맑은탕은 양념이나 조미료 없이 온전하게 병어의 맛을 담아내는 가장 정직한 요리다. 다 태운 장작에 구운 병어구이는 추억의 음식이며, 병어를 꾸덕하게 말리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귀한 식재료가 된다.

어린 시절 병어를 더 많이 먹으려고 다퉜다는 최연화(71세)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병어를 굽고, 김순희(69세) 씨는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 먹을 만큼 맛있었던 병어를 기억한다. 한철이라 늘 손꼽아 기다렸던 병어에는 오래된 추억과 함께 여름을 기억하는 맛이 담겨있다.

복사꽃 만발했던 과수원에 꽃이 지고 뜨거운 햇볕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탐스럽게 익어가는 복숭아 향이 번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은 복숭아 농가가 350여 호에 달하는 복숭아의 고장이다. 도곡면에서 나고 자란 박민자(64세) 씨와 이병인(67세) 씨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연을 맺어 부부가 됐다. 어느 날 박민자 씨가 꾼 꿈을 계기로 복숭아 농사를 시작하게 된 게 어느덧 26년째. 달큰한 복숭아 향이 짙어지고 과육에 단맛이 차오를수록 두 사람의 여름도 무르익는다.

효산1리 이장인 박민자 씨는 한 달에 두 번꼴로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 잔치를 연다는데, 여름 잔칫상은 온통 복숭아 세상이다. 가장 뜨거운 계절에 가장 시원하게 먹는 초계무침에도 복숭아가 들어가고, 음식을 만드는 양념이나 고추장에도 꼭 복숭아즙을 넣어 만든단다. 그러면 달콤한 풍미가 깊어진다고.

복숭아즙으로 반죽을 해서 만드는 복숭아떡은 조선 후기 부녀자들을 위한 가정생활 지침서인 에서 그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쉽게 맛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여름 별미다. 온 마을이 함께 나눠 먹는 초대형 복숭아 비빔밥과 복숭아 냉국까지, 향긋하고 푸짐한 복숭아 밥상이 완성된다. 제철을 맞은 복숭아로 정성스러운 한 끼를 차려 이웃과 나누는 시간. 박민자 씨에게 여름은 복숭아가 가장 맛있어지는 때이자, 그 맛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계절이다.

경호강 맑은 물길이 굽이치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수중군자(水中君子),‘ ‘민물의 여왕’이라 불리는 은어가 강으로 돌아오는 이맘때, 강태공들도 경호강에 몰려든다. 1년생인 은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여름 한 철뿐이다. 그래서 강태공 김태화(60세) 씨에게 여름은 일 년을 기다려 맞는 소중한 계절이다.

경호강에서 은어를 잡는 방법은 ‘놀림낚시’다. 은어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강한데 이걸 이용해서 미끼 은어를 물속에 넣어 서로 공격하게 만든 뒤 바늘에 걸려들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은어를 낚을 땐 꼭 두 마리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은어 낚시 덕분에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는 김태화 씨의 은어 사랑은 각별하다.

물에서 막 건져 올려 가장 신선할 때 맛보는 은어회는 짧은 계절이 허락한 한철 진미이다. 특히 돌이끼를 먹고 자란 은어에겐 수박향과 같은 상큼한 향기가 배어난다. 은어와 소고기, 새우에 버섯, 채소까지 곁들어 만들어내는 은어탕은 쉽게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음식으로 그가 꼽는 여름 보양식이다.

은어구이도 특별한 비법으로 구워내는데, 지느러미에만 소금을 묻혀 숯불에 은은하게 3시간 동안 구우면, 내장이 녹아내리면서 스며들어 녹진하고 고소한 일품요리가 된다. 은어 머리와 뼈까지 버리는 것 하나 없이 다 넣어서 만드는 은어밥도 별미 중의 별미다. 은어를 찾아 강을 누비고, 잡아 온 은어로는 가족을 위한 푸짐한 밥상을 차리는 그 모든 과정이 즐거운 계절. 김태화 씨가 일 년 내내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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