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2만 2900볼트 고압 전류에 감전된 아들을 살린 ‘아버지의 정원’

  • 2024.11.08 16:20
  • 9시간전
  • KBS

푸른 섬, 제주 서귀포시. 올봄 문을 연 정원에는 100여 가지가 넘는 꽃과 나무가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이름도 낯선 ‘석부작’. 제주의 현무암 돌에 단단히 붙어 뿌리 내린 나무들이 천 점 이상인데, 정원 주인장 한건현(70) 씨가 25년을 돌과 나무에 빠져 만든 것들이다. 제주 말로 나무를 뜻한다는 ‘낭’, 그래서 건현 씨는 그의 석부작에 ‘돌낭’이라는 예쁜 이름도 붙였다. 결혼하고 38년 동안 억척스레 집안 살림을 꾸린 아내 고영희(68) 씨, 결혼 4년 차에도 깨가 쏟아지는 아들 희천(38) 씨와 며느리 이은지(33) 씨, 화가인 딸 한아(36) 씨까지 온 식구가 만 4천 평에 달하는 아버지의 정원으로 모였다. 7년 전 그날 이후 가족의 삶이 달라졌다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천벽력 같은 사고였다. 아버지 건현 씨는 돈 되는 귤밭까지 뒤엎어 석부작에 몰입하며 운영하던 양어장은 서른한 살 아들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만 2만 2,900볼트에 감전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아들은 전신 3도 화상을 입었고, 제주에서는 치료가 어려워 비행기로 실려 서울로 옮겨졌다. 피부이식 수술만 7번, 1년 넘는 병원 생활을 했다. 자식이 고통스러워하는 건 차마 볼 수 없었다던 부모님, 직장을 그만두고 남자 친구 간호를 시작한 스물여섯 살 여자 친구에 화가 동생까지, 서울에 작은 방을 얻고 똘똘 뭉쳐 희천 씨 간호를 시작했다. 불사조처럼 살아난 아들은 수호천사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

1년 전 식구도 늘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희천 씨가 결혼해도 아기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기적처럼 아들 명림(18개월)이가 태어났고 온 가족의 활력소가 됐다. 아들을 살려내고 중단했던 정원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가족. 아들 희천 씨는 굴착기 자격증을 따왔고, 서울에서 활동하던 화가 딸도 정원 만들기에 합류했다. 정원으로 온 식구가 함께 출근하고, 퇴근도 함께 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오롯이 가족의 힘으로 가꿔가는 아버지의 정원, 돌과 나무에 매달려 사는 아버지에겐 정원이 천국이란다. 그 천국에서 아내 영희 씨는 정원 해설사가 됐다가 잡초를 뽑다가 식당에서 밥 짓느라 종횡무진 바쁘다. 석부작에 빠져 사는 남편에게 언젠가 “당신은 돈이 없으니, 석부작이나 하나 달라” 했는데 돌아온 답이 “안된다”였다나. 아내는 그게 두고두고 서운하다. 남편도 내내 그걸 기억하고, 며느리 은지 씨와 함께 아내를 위한 깜짝선물을 준비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정원 일. 가족은 헤쳐 모여 다 함께 꽃씨를 심고, 쉬는 날도 없이 일당백 정원 일을 해 나간다. 천 그루가 넘는 동백 묘목이 자라 일일이 돌 땅을 파서 옮기고, 무너진 돌담을 보수하고, 오래된 귤밭에 남겨둔 석부작을 옮겨오는 일은 다 아버지와 젊은 아들의 일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들의 특별한 생일, 건현 씨 부부는 새벽같이 어판장에서 횟감을 사와 아들을 위해 직접 회까지 떠주며, 무탈한 날들에 감사한다. 희천 씨 생일 선물은 1박 2일 구미행, 며느리 은지 씨의 친정이다. 결혼도 안 한 외동딸이 물불 가리지 않고 아픈 남자 친구를 간호한다고 했을 때, 당장 서울로 달려갔다던 친정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고압 전류에 감전된 아들을 살려내고 아버지의 정원으로 모인 가족, 투박한 돌에 단단히 붙어 뿌리내린 석부작처럼, 오늘도 가족은 정원에서 꿋꿋하게 삶을 뿌리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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