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없는 문명
경계선 없는 문명

중국 지도자들은 서로 다른 문명 사이의 경계선이 문명과 야만 사이처럼 쉽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교파들이 다신교 적대세력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기독교가 어떻게 그리스-로마 문명에 승리를 거두었는지, 그 후 분열된 기독교 집단들이 예언자 마호메트의 영성으로 뭉친 아랍인에게 세력권의 절반을 정복당하기에 이르는지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이 격화된 것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적극 받아들인 세속파와 이를 신성모독으로 배격한 근본주의적 신앙파 사이의 대립 때문입니다. 양측의 영성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고, 피차의 역사가 그렇게 뒤얽혀 있고, 지난 1500년간 양측의 성쇠를 좌우한 사상과 제도를 서로에게서 배워온 사이인데, 어떻게 그 충돌의 주체가 문명 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양쪽 다 바이블이든 코란이든 성서(聖書)가 모든 사상의 출발점이고 지혜의 그릇이었습니다. 기독교 쪽은 그 교섭 단계를 잊어버렸고, 이슬람 쪽은 얼마동안 살펴보다가 결국 버리고 말았습니다. 중국 문명이 이슬람 문명과 같은 식으로 유럽 문명과 대립한다고 보는 헌팅턴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뿌리를 함께하는 상대와 수백 년간 대립을 겪어 온 이슬람 세계와 달리 중국은 19세기까지 기독교 세계와 별 접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이 경탄한 이 기술들이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공유하는 유일신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속적 그리스-로마 유산의 산물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거대한 도전 앞에서 문명을 지키려 애쓴 근대중국의 경험에서 문명의 경계선 없는 속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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