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며 꽃과 나무를 닮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손끝이 닿는 곳엔 언제나 자연의 향기가 가득하다. 햇빛을 담고 바람이 스친 손으로 만드는 정원 만찬을 만나본다.
늘 자연을 동경하지만, 야생의 자연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야생과 문명 사이, ‘정원’을 만들었다. 동서양 모두 정원문화가 있는 이유다.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겐 숨을 쉴 수 있는 공간, 세파에 상처 입은 사람들에겐 빨간 약이 되는 존재가 바로 정원이다. 그런데 여기, 마치 운명처럼 정원을 꾸리게 되고, 정원으로 삶이 바뀐 사람들이 있다.
이름하여 ‘정원에 빠진 사람들’. 그들이 땅 위에 쓴 인생 이야기가 궁금하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그곳에서 나고 자라는 식물들과 계절의 흐름을 벗 삼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차리는 밥상에는 사계절의 맛이 담겨있고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피어있다. 이번 에서는 ‘자연’이라는 도화지에 인생을 그리는 사람들과 그들이 정원에 차린 만찬을 만난다.
전라남도 해남의 남상호(63세), 이은혜(63세) 부부는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달마산을 배경으로 정원을 가꾼다. 축구장 약 스무 개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원은 남편 남상호 씨의 놀이터. 정원이 좋아서 매일 풀과 나무를 다듬는 남편 덕분에 아내는 늘 “달마산 산지기 어디 있어요?”라고 목청을 높여야 한다. 처음 남상호 씨가 상의 없이 덜컥 정원을 구매해서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지금은 오히려 아내 이은혜 씨가 정원 속에서 더 많은 행복을 얻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행복은 해남 땅끝에서 나고 자라는 청정 식재료로 자신만의 요리법을 만드는 것이다. 마을 이웃들에게 해남의 역사와 전통을 듣고 청정 재료를 활용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은혜 씨의 행복이다.
‘나박조개’라고 불리는 떡조개는 마을 이웃들이 알려준 해남의 특별한 식재료다. 특별한 재료의 조리법도 특별한데, 국물에 쌀을 갈아 넣는다. 뽀얀 국물과 통통한 조갯살이 어우러져 마음마저 편안하게 해주는 맛을 선사한다. 또 다른 해남의 요리는 바로 ‘콩나물무침’이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반찬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갓씨를 숙성해 아주 독특한 매운맛을 낸다. ‘제비쑥 콩국수’와 ‘황칠 솔잎민어찜’을 더해 완성한 달마산 정원 식탁, 달마산 산지기로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의 정이 함께 담겨있다.
경상남도 남해에는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정원이 있다. 기차, 공룡과 같은 거대한 형상의 나무와 아기자기 귀여운 캐릭터를 닮은 나무도 있다. 이처럼 여러 모양으로 정원수를 만드는 것을 ‘토피어리’라고 한다. 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전해오는 정원 아트다. ‘꽝꽝나무’라는 정원수를 심고 500여 가지 모양의 토피어리를 만든 이는 이화형 씨(38세)의 시아버지는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 유자밭을 토피어리 정원으로 만들었다. 5년 전 시아버지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시어머니와 부부가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여름엔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고된 일인 정원 일이다 보니, 음식 솜씨가 훌륭한 화형 씨의 친정엄마가 딸 내외와 사돈을 위해서 영양 만점 밥상을 준비한다. 제철을 맞이하여 살이 통통하게 오른 키조개를 굽고 친정엄마의 손맛으로 양념한 두루치기를 볶아 키조개 껍데기 접시 위에 올린다. 고기 요리를 하다 보면, 유난히 고기를 좋아했던 시아버지를 추억하게 된다. 거기에 남해의 기운으로 노랗게 익은 단호박과 살이 꽉 찬 꽃게를 넣어 만든 단호박 된장찌개까지 상에 오르면 기운 펄펄 영양 밥상이 완성된다. 꽝꽝나무 정원 뒤편의 편백 숲에서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서로의 감사함을 되새겨 보는 밥상을 만나본다.
전라남도 화순에는 꽃과 허브 향기가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정원이 있다. 여행을 다니며 세계 30여 개국에서 구해온 오색찬란한 꽃들과 자연의 빛과 양분만 먹고 자란 향긋한 허브들이 가득한 정원이다.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를 닮아 활짝 핀 꽃을 보며 행복을 찾는 양영자 씨(70세). 그리고 그런 아내의 행복과 웃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머슴이 되는 김남순 씨(73세)가 정원의 주인공이다. 허브 향이 솔솔 풍겨오는 정원에는 연못이 하나 있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 주인공들의 삶은 마냥 그림 같지만은 않았다. 양영자 씨는 과거 암 투병으로 심각한 상황까지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정원을 가꾸며 아픈 몸이 다시 건강해졌고 삶의 활력을 얻었다. 정원 전체가 채소 마트다 보니, 그들의 식탁도 자연스레 자연주의 식탁이 되었다는데. 청정 화순에서 막 건져 올린 다슬기로 끓인 맑은 두부탕까지 더해져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청정 한 끼가 준비됐다.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 미소 짓는 환한 얼굴이 그들이 가꾼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