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천하장사’ 이만기, 씨름 후배가 만든 춘장 없는 매콤함 ‘전주 물짜장’을 맛보다!

  • 2026.05.28 11:11
  • 1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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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을 낡았다 여기지 않고, 그 안의 시간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동네 전주. 그 따뜻하고도 단단한 마음들을 따라 동네한바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본다.

모든 것이 풍족해 ‘온고을’이라 불리던 땅, 전주. 전주천변에는 새벽이면 잠깐 열렸다가 아침이면 사라지는 도깨비시장이 선다. 200여 년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이 시장에는 전주 인근 산과 들에서 올라온 제철 먹거리와 오래된 생활의 풍경이 함께 모여든다.

매일 새벽 5시부터 아침 9시까지. 싸전다리와 매곡교 사이 골목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과 좌판을 펼친 상인들로 분주해진다. 풍경도 예전 그대로다. 옛것과 오늘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함께 흐르는 도시, 전주. 오래된 골목의 풍경을 따라 천천히 길을 나서본다.

남부시장에서 전통 방식 그대로 수제 전병을 굽고 있는 김호기(75) 씨. 젊은 시절 전주의 한 제과점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10여 년 전 다시 수제 전병을 굽기 시작했다. 시장의 활력 속에서 달콤하고 바삭한 황혼을 구워내는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본다.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지우산을 가장 많이 생산했던 도시, 전주. 하지만 보급형 비닐우산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평생을 우산과 함께 살아온 대한민국 유일의 지우산장, 윤규상(85) 명인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 다시 지우산 복원에 매달렸다. 대나무 살을 고르고 들기름을 바르기까지 80여 차례의 고된 공정을 거쳐야 하는 길. 12년 전부터는 반도체 회사에 다니던 아들 윤성호(47) 씨가 곁을 지키며 아버지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700여 채 한옥이 지붕을 맞대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에는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우리 전통과 생활문화를 지켜내려 했던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고택이 바로 학인당이다. 1908년 궁중 양식을 바탕으로 지어진 이 대형 한옥은, 판소리와 전통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소리가 집 안 깊숙이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설계된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해방 이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이 머물던 영빈관으로 사용되며 전통문화와 근현대사의 시간을 함께 품어왔다. 현재는 5대손 백광제(44) 씨가 고택을 지키며, 단순한 건축을 넘어 시대를 지켜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뜨거운 열망과 전통의 가치를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춘장 없이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내는 물짜장은 전주에서 시작된 독특한 내력을 가진 음식이다. 전주의 한 작은 중식당에는 50년 동안 묵묵히 주방을 지켜온 아버지 전춘길(70) 씨와 그의 뒤를 잇는 아들 전용성(44) 씨가 함께 물짜장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모래판 위를 누비며 촉망받는 씨름 선수였던 용성 씨는 팀이 해체되는 인생의 고비 속에서 아버지의 주방으로 들어왔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묵직한 땀방울로 전주만의 특별한 맛을 지켜가는 부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세월 속에 잊혀가던 오래된 마을 정미소가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색장정미소는 한때 폐허처럼 방치돼 있던 100년 가까운 정미소였다. 이 공간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은 이의만(74) 씨. 그는 정미소의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 전국을 돌며 문화재 복원 기술자들을 찾아다녔고, 폐교에서 떼어온 창틀과 오래된 양철 자재까지 손수 모아가며 공간을 다시 세웠다.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찾아와 쉬어가는 따뜻한 문화공간이 된 곳에서, 잊힐 뻔했던 마을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150여 종 1천여 그루의 철쭉이 만발해 온 동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 있다. 36년간 정성으로 일구어낸 김강수(84) 씨 부부의 집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와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까지 한 폭의 그림 같은 이곳은 누구나 쉬어갈 수 있도록 사시사철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어릴 적 꿈꾸던 자연 속 낙원을 실현한 강수 씨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음료와 간식까지 아낌없이 베푼다. 좋은 풍경은 혼자 보기보다 함께 나눌 때 더 오래 남는다고 믿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단돈 8천 원에 12가지가 넘는 정성 가득한 찬을 맛볼 수 있는 곳, 전주 중앙시장 인근에는 정 넘치는 백반 뷔페가 있다. 맛의 고장 전주에서 30여 년간 도시락과 백반을 만들어온 강은희(64) 씨의 가게다. 두 아들을 키워내기 위해 시작한 음식 장사가 어느덧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는 은희 씨. 매일 새벽 4시 오토바이를 타고 남부시장과 중앙시장을 누비며 가장 좋은 재료만 골라 온다. 매일 바뀌는 제철 나물과 제육볶음, 생선구이에 따끈한 깨죽까지, 아낌없이 채워 넣는 손길에는 그녀만의 넉넉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전주의 인심과 자부심이 한 데 담긴 밥상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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