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PICK 쌤과 함께> 갱단과 전쟁, 위기 속 중남미의 해법은?

  • 2024.08.09 09:29
  • 5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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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 풍부하고 열정 가득한 ‘풍요의 땅’ 중남미.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최근 중남미에서는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아이티는 갱단이 수도의 80% 이상을 장악했고 에콰도르는 갱단의 폭력으로 인해 세 번째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심지어 멕시코에서는 정치인들이 연속적으로 습격당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8월 11일 방영되는 에서는 부산외국어대 중남미지역원 이태혁 교수와 함께 왜 이러한 국가 치안 붕괴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지,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본다.

이태혁 교수는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갱단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거나 위협하는 현상을 ‘갱 거버넌스(Gang Governance)’로 정의할 수 있다며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중 갱단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인 아이티. 이 혼란의 주범은 바로 지나인(G9)이라는 갱단이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활동하는 9개 범죄조직 연합체로 리더는 지미 셰리지에이다. 그는 경찰 특수부대 간부 출신으로 부패한 정부에 맞서 서민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을 앞세워 활동하고 있다. 교도소를 습격해 수천 명의 재소자를 탈옥시킨 지나인은 교도소 습격의 목적이 당시 아리엘 앙리 총리 사퇴라고 밝혔다.

1957년에 1986년까지 29년간 뒤발리에 부자가 세습 독재를 했던 아이티는 1990년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선출돼 일시적으로 민주화를 이뤘으나 이후 수차례의 쿠데타와 2010년 대지진으로 정국 혼란이 이어지며 갱단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 것. 더군다나 2017년 집권한 모이즈 대통령은 반대파를 억압하기 위해 G7 연합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며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모이즈 대통령은 2021년 자택에서 의문의 암살을 당했고, 국가권력 장악에 나선 지나인은 급기야 올해 3월 외국 순방 중인 앙리 총리의 귀국을 방해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한 앙리 총리는 사임했다. 아이티는 갱단 두목이 한 나라의 총리를 사퇴시킨 충격적인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 교수는 아이티에서 이처럼 갱단이 나라를 장악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로 ‘프랑스’와 ‘대지진’ 두 가지를 꼽았다. 1697년부터 1803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로 노예처럼 착취를 당했던 아이티는 기나긴 독립전쟁 끝에 1804년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그런데 독립 조건으로 프랑스는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독립을 위해 억지로 배상금을 내야 했던 아이티는 막대한 부채로 독립과 함께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또한, 아이티 전체 인구의 1/3이 피해를 본 2010년 대지진은 ‘갱 거버넌스’가 확립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지진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가 집중되었지만 정치권의 부패로 인해 아이티 국민들은 정작 구호 물자를 보급받지 못했고, 대신 이를 차지한 갱단이 권력의 공백 속에서 급속도로 세력을 불려 나간 것이다.

한때 은퇴자들의 천국, 지상낙원이라고도 불렸던 에콰도르. 하지만 현재 갱단과의 전쟁 중이다. 갱단 간의 세력 다툼 속에 일어난 2021년 교도소 폭동 이후 살인 범죄율이 급격히 늘어 지난해에는 2016년에 비해 9배나 폭증했다. 이 교수는 “올해 초 에콰도르 최대 갱단 ‘로스 초네로스’의 두목이 탈옥했고, 방송사에 갱단이 난입해 생방송으로 이 장면이 그대로 송출된 사건도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승현 아나운서는 “등줄기가 서늘해진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놀라워했다. 갱단이 방송사를 공격한 것은 노보아 대통령의 갱단 소탕 조치를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이 사건의 수사 검사와 갱단 척결을 내세운 비야비센시오 대선후보가 대낮에 총을 맞고 살해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정치인 대상 테러가 심각한 멕시코는 갱단의 선거 후보자 대상 폭력과 테러로 올해 최소 50여 명 이상이 선거 운동 기간 중 사망했다고 한다. 개그맨 유민상이 “왜 갱단이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자행하는지” 묻자 이 교수는 “경쟁 갱단에 유리하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후보자를 사전에 제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중남미에서 갱단들의 주요 자금줄이 되어 그들 간의 경쟁을 촉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근 들어 더욱 빠르고 변칙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마약’이다.

사실 중남미의 마약 문제는 오래된 역사는 아니다. 19세기 철도 건설 등을 위해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대마초와 아편이 전해했고, 이후 코카인이 만들어지며 중남미에서 마약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중남미 마약의 최종 행선지는 바로 세계 최대 마약 소비 시장인 미국. 19세기 말 멕시코로부터 미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중남미 마약은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해졌다.

1970년대 미국 마약단속국과 멕시코 정부가 협력해 콘도르 작전을 실행했고, 멕시코의 마약이 좀 잡히자 이번에는 콜롬비아의 코카인 생산 및 유통이 활발해지게 됐다. 이때 콜롬비아의 마약을 장악한 카르텔 두목이 세계 10대 부자 순위에 들어갈 정도로 돈을 번 에스코바르. 그는 1993년 미국과 콜롬비아 등의 합동작전으로 사살되었으나 마약은 사라지지 않았고, 단지 공급처가 바뀔 뿐이었다. 주로 선박과 비행기를 이용하던 콜롬비아 카르텔과 달리 멕시코 카르텔은 땅굴과 인편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2006년부터 멕시코의 마약 전쟁은 다시 시작됐다.

중남미 각국은 군대까지 동원했으나 왜 마약 카르텔은 지금까지 완전히 소탕되지 않았을까? 첫 번째로 저렴하고 중독성 강한 신종 마약의 등장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름 아닌 ‘풍선효과’. 이는 한 국가를 단속하면 다른 국가에서 마약 생산 및 유통이 활발해지는 것을 말한다. 에콰도르는 과거에는 단순히 마약이 통과하는 곳에 그쳤지만, 이제는 풍선효과로 콜롬비아를 대신해서 마약을 분배하고 저장하는 센터로 그 역할이 확대된 것이다.

한때 인구 10만 명당 106.8건으로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였던 엘살바도르. 그러나 2019년 취임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강력한 조직범죄 소탕 작전을 수행해 빠른 속도로 치안을 안정시켰다. 부켈레는 마노 두라, 일명 철권통치를 통해 경찰이 조직 폭력배로 의심되는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 가능케 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2년여에 걸쳐 75,000여 명을 수감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으로 구금 중 고문과 방치로 인한 사망도 계속 발생하고 있어 국제사회는 엘살바도르의 인권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갱단의 뿌리부터 뽑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태혁 교수는 무엇보다 근본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중남미의 빈곤이 심각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 젊은이들이 쉽게 범죄에 대한 유혹으로 내몰린다는 것. 마약 조직이 부를 과시하는 일명 ‘나르코 컬처(Narco Culture)’도 빈곤층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이 교수는 “갈수록 ‘글로벌화’되는 마약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초국가적인 연대가 필요하며, 갱단 카르텔을 막기 위한 국가 간 공조와 협력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풍요의 땅’ 중남미는 행복과 평화로 가득 찬 곳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갱단과 전쟁, 위기 속 중남미의 해법은?’은 8월 11일(일)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후에는 KBS홈페이지(www.kbs.co.kr)와 wavve, 유튜브 KBS교양, KBS다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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