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심문은 예술” 고문 기술자 이근안, 탄생과 구속 과정 공개! 시청자들 ‘분노와 슬픔’ 불러일으켰다!

  • 2025.01.17 11:22
  • 12시간전
  • SBS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심문은 예술 고문 기술자 이근안 이야기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희대의 ‘고문 기술자’ 경찰 이근안의 탄생배경부터 구속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공개하며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6일 방송된 ‘꼬꼬무’ 159회는 ‘이름없는 기술자’로 1970~1980년대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잔인함과 그로 인해 고통받은 평범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리스너로는 최기환 아나운서, 배우 박은석, 가수 전효성이 출연했다.

이날 이야기는 한 명의 지명 수배자로 시작됐다. 신창원보다 무려 4배의 기간이나 도주한 지명 수배자이자, 도주 기간 동안 투입된 경찰만 누적 389만명이었던 수배자의 가방에는 신발, 머리빗, 칫솔, 면도기가 담겨 있었는데, 그는 ‘이름 없는 기술자’라고 불리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었다.

1978년 2월 서해 강화도 인근의 작은 섬마을에 살던 스물 두 살의 박남일은 열다섯 터울의 형인 박남훈이 어느 날 새벽 괴한들에 의해 끌려 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고, 1982년 전북 김제에서 스무살이었던 최봉준의 아버지는 한 순간에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다. 그리고 1985년 경기도 하남시의 한 다방에서 서른 다섯살이었던 김성학은 난데없이 등장한 남성들에게 붙잡혀 어딘가로 끌려가야 했다.

이들 모두가 만난 남자는 경찰이었는데, 그는 ‘이름 없는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이었다. 김성학은 “이근안이 나에게 지금까지 온전히 빠져나간 사람 없다. 그러니까 솔직히 다 얘기하라더니, 관 바닥에 까는 널빤지에 자신을 눕히고 전기 고문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김성학은 괴로워하며 고문을 당했던 기구를 직접 그림으로 그렸고, “전기고문을 6번 받았는데 악취 냄새가 났다. 그들도 그 냄새를 못 맡으니까 30분씩 자신들도 교대를 했다”며 “그 당시의 마음을 누구도 모를 거다”라고 눈물을 쏟아냈다.

이근안은 이들뿐 아니라 대학생들과 재야 인사들을 간첩 누명으로 잡아들이며 ‘죽을 만큼 아프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게 고문을 자행해 동료 경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박남일의 형인 박남훈, 최봉준의 아버지, 김성학의 공통점은 납북 어민 또는 납북 어민의 가족이었다. 이근안은 이들을 간첩이라고 칭하며, 거짓 자백을 위해 가족까지 고문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피해자들은 하루아침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썼지만, 이근안은 경사에서 경위로 승진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대공수사의 대부’, 일제시대 ‘고문왕’이라고 불리는 친일 경찰 노덕술의 마지막 후계자 박처원이 우두머리로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스카우트되어 민주화 운동가까지 고문을 자행하며 악명을 떨쳤다. 경찰이 고문을 하는 건 불법이었지만, 이근안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 당시 대공 경찰들은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름이 아닌 ‘부장’ ‘사장’등으로 불렀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그들에게 고문을 가한 경찰이 누군지 몰라 신고를 하지 못했음이 공개되어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985년 민주화운동 청년연합회 초대 의장이었던 김근태 의장이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한 후 ‘이름없는 기술자’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근안의 주소를 찾아내면서 그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졌지만, 이근안은 검찰과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에 보다 못해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된 학생들의 어머니들로 꾸려진 ‘민가협’(민주화실천 가족운동 협의회)이 직접 이근안을 잡기 위해 나섰다. 전국에서 제보가 쏟아졌지만, 자취를 감춰버린 이근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후 이근안이 도주한 지 11년이 흐른 1999년 10월. 이근안이 죗값을 치르겠다며 돌연 자수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피해자인 김성학의 재심 신청이 법원에 받아들여져 공소시효가 2013년으로 늘어났던 상황. 재심 신청으로 재판의 시효가 새롭게 시작됐고, 결국 이근안이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15년을 다시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자수를 한 것이다. 심지어 이근안이 오랫동안 몸은 숨긴 곳은 다름아닌 자신의 집으로 빈박스로 자신의 몸을 숨겼다는 것이 드러나 리스너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근안은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으로 유죄판결 받았고, 이후 항소했지만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됐다.

이로 인해 박남일, 최봉준은 재심을 신청했고, 결과는 피해자들의 전원 무죄였다. 40년간 이들에게 따라붙은 간첩의 꼬리표는 떼어졌지만,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누명을 쓴 최봉준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사형되었고, 당시 유일하게 무죄를 받은 김성학도 연좌제가 될까 봐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살수 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전효성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 그 희생자들이 너무 착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게 화가 난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장성규는 “이들의 삶을 누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라고, 최기환 아나운서는 “당연한 이야기를 들으려 40년을 기다렸고, 인생은 망가졌고”고 안타까워했다.

더구나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이근안은 지난 2012년 자서전을 내며 “심문도 예술이다”라며 “심문도 상대방이 감동을 받아야 자백한다”, “그때의 나는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것이다. 그게 애국이다”라고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가했다. 심지어 밧데리 두개로 겁을 준 것을 전기고문이라고 착각한 거라며 당당하게 말해 충격을 선사했다. 결국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이근안과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했고, 불과 얼마전인 2024년 법원은 2차 가해를 인정했다. 이 판결의 배상금 7억원 중 이근안이 2억원을 공동 배상해야 했는데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비용까지 그가 배상해야 할 금액은 수십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근안은 단 한푼의 배상금도 지불하지 않고 있으며, 지연 이자만 10억원이 되고 있다. 이에 방송에서는 이근안의 공개수배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며, 그가 내야 할 배상금을 나라가 대신 내면서 국민의 세금이 쓰였기 때문에 이제 그는 국민 모두의 공개 수배자임을 확인시켰다.

이에 장현성은 “아직 그에게 들어야 할 말, 받아야 할 게 있다. 길고 긴 수배가 끝나면 오늘 이야기도 마침표를 끝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은석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조심스럽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 분들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며 향후 지속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희망을 전했다.

이에 각종 커뮤니티 및 SNS에서는 “오늘 꼬꼬무 이근안..벌써부터 화나네”, “꼬꼬무 별 생각없이 틀었다가 각잡고 보는중”, “오늘 꼬꼬무 레전드네~ 고문기술자 이근안 살아있었구나”, “아오 이근안 진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소름” 등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꼬꼬무’는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며 느낀 바를 각자의 '이야기 친구'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1:1 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 10시 20분에 SBS를 통해 방송된다.

  • 출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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