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우리는 어느새 오늘을 잊고 산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지금 맛보지 않으면 1년을 기다려야 하고, 혹은 바로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진귀한 것들이 지금을 즐기라고 손짓한다.
경남 고성 앞바다에서만 잡힌다는 돌장어, 양평 산나물로 차린 촌집 한 상, 경남 진해 진동만 바다가 품은 미더덕까지. 제철의 재료들로 차린 한 상에는 주옥같은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버무려져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특히 몸집이 작고 고소한 돌장어를 먹기 좋게 손질한 ‘꽃돌장어회’와 고성군 진동면 일대에서만 먹던 미더덕찜국, 단돈 6천 원에 갓 무친 13가지 나물 등이 소개되어 시청자의 미각까지 매료시킬 예정이다. 맛과 이야기가 풍성한 이번 에서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일깨운다.
호수처럼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 진해만. 그 바닷속 돌 틈에는 물살을 견디며 단단하게 자라난 장어가 있다. 바로 ‘돌장어’. 일반 붕장어보다 몸집은 작지만, 육질이 탄탄하고 쫄깃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특히 지금 이맘때 돌장어는 기름이 가득 차올라 고소한 풍미가 절정에 달한다.
이 계절, 통발로 돌장어를 잡아 올리는 김은향 씨(72세)는 어부였던 남편을 따라 포항에서 고성으로 와 정착했다. 그 옛날엔 돌장어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손질해서 팔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일이 많아지다 보니 동생 김은옥 씨(63세)까지 불러 이곳에 뿌리내리게 했다. 남편을 따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돌장어가 징그러워서 잘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제는 지금의 삶을 살게 해 준 돌장어와 이 바다가 고맙기만 하다.
이곳에서는 특유의 방식대로 껍질을 벗겨 꽃 모양으로 칼집을 내 회로 즐기거나 숯불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서 먹는데, 이때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생강과 방앗잎이다. 고소한 돌장어구이와 돌장어매운탕 한 냄비를 가운데에 두고 시끌벅적 밥정을 나누는 시간. 지금, 이 바다와 이 계절이 있기에 더없이 행복하다는 자매. 그 웃음 가득한 밥상에서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지금의 맛을 만난다.
천년 은행나무로 유명한 양평군 용문면의 오일장. 장이 서면 언제나 나타나는 일명 ‘양평 나물 할매’ 오경숙 씨(77세). 그는 양평군의 끝자락인 청운면에서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촌집 식당을 운영 중이다. 너무 일찍 고향을 떠나 세 아이를 다 키우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경숙 씨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해 오던 식당을 이어받아 정을 붙이고 살았다. 이 식당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딱 두 시간. 무려 13가지의 푸짐한 제철 산나물 밥상에도, 가격은 변함없이 단돈 6천 원이다.
곁에서는 가격을 올리라고 성화지만, 마을 사람들이 나눠주는 채소들까지 보태면 욕심부리지 않고 손님을 맞을 수 있단다. 2시간을 고수하는 건 나물이 가장 맛있는 시간이 딱 그때이기 때문이다. 연달아 사랑하는 가족을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자신마저 심장병을 얻은 후, 오늘을 즐기기 위해 두 시간 영업을 고수하게 되었다는데, 그 나머지 시간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 이제야 삶의 진짜 맛을 알게 되었다는 오경숙 씨. 그 깊은 ‘맛의 철학’ 속에서 내가 지금 살아있는 오늘, 그리고 이곳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전국 미더덕 생산량의 70%가량을 책임지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30여 년 전 미더덕 양식을 본격화하면서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미더덕에 기대 살았다. 5, 6월은 이곳 진동만 바다의 향을 품은 미더덕이 가장 맛있는 시기다. 입안에서 톡 터지며 퍼지는 향긋한 바다 내음,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은 잃었던 입맛도 단번에 깨운다.
열 살 때부터 엄마를 도와 회를 썰었다는 조영조 씨(56세)와 그런 아버지를 이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더덕을 만졌다는 조세인 씨(27세). 부자는 오늘도 손 많이 가는 미더덕을 손질하며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미더덕회와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눠 먹었다는 미더덕들깨찜국 등 이곳만의 미더덕 맛을 지키고 있다. 해가 갈수록 뜨거워져 수온이 올라가는 탓에 미더덕이 점점 귀해지는 요즘, 미더덕 향을 함께 나누는 이 순간이 더없이 귀하단다. 이 가족의 밥상에는, 지금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이 맛과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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