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푸른 수평선 너머, 우리 바다의 남쪽 경계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2026년 ‘올해의 섬’으로 선정된 거문도(巨文島). 여수에서 쾌속선으로 약 두 시간을 달리면 푸른 남해 한가운데 동도와 서도, 고도 세 개의 섬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거친 남해 외해 속에서도 삶의 자리를 지켜온 섬사람들의 시간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거문도는 풍요로운 삶의 터전인 동시에 우리 바다의 경계를 정하는 영해기점 섬이다. 거문도 동쪽 바다에는 백도와 삼부도를 비롯한 무인도들이 자리한다. 이 섬들과 주변 바다는 거문도 주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으며, 수많은 해양생물이 살아가는 소중한 생태의 터전이기도 하다. 바다가 삶을 품고, 사람이 그 바다를 지켜온 곳. 남해 바다의 보물섬, 거문도가 품은 이야기를 만나본다.
농사짓기가 녹록지 않은 섬이지만, 해풍쑥만은 예외다. 새순이 돋는 2월부터 거문도를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해풍쑥. 바다 일이 뜸한 철에도 꾸준히 일거리를 내어주고 뜯어도 금세 다시 자라나니 섬 주민들에게 이만한 효자가 없다.
해풍쑥이 밭의 효자라면, 평생 물질로 살림을 일군 해녀 이성자 씨에게는 바다가 키워낸 전복과 소라, 돌문어와 미역이 든든한 효자다. 오늘도 물질에 나서 망사리를 가득 채우는 성자 씨.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바다는 그녀에게 평생의 삶터이자 부모와도 같은 존재다.
전국의 바다를 누비던 스쿠버다이빙 강사 정민교 씨가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곳은 거문도였다.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에 반해 섬에 정착한 그는 다이빙을 배우러 온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거문도 주민이 됐다.
장모 광옥 씨에게 그는 서 있기만 해도 자랑스러운 '백만 불짜리 사위'다. 장모가 '일 년 농사'를 거두러 대삼부도로 향할 때면 함께 배를 타고 나가 일손을 보탠다. 바다 일에 나서며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두 사람. 거문도 바다가 맺어준 가족의 정은 그렇게 깊어 간다.
우리나라 영해의 범위를 정하는 23개 영해기점. 그중 유인섬 거문도와 무인도 하백도는 다도해 남쪽 끝에서 우리 바다의 경계를 지키는 중요한 기준점이다. 하지만 보호종이 살아가는 하백도 수중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침몰선이 발견됐다. 정민교 씨를 비롯한 잠수사들은 보호종의 서식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잔해를 신중하게 인양한다. 폐기물은 걷어내고 수중 생태계는 지키는 것이 이번 작업의 핵심이다.
한편 거문도 주민들의 바다 곳간 역할을 하는 무인도 대삼부도에서는 해안으로 밀려온 쓰레기를 걷어내는 정화 작업도 이어진다. 우리 바다의 경계를 지킨다는 건 그 안에 깃든 생명과 환경까지 지켜내는 일이다.
약 150톤 정도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계속 오랜 기간 남아 있습니다.
미세하게 파쇄된 상태로 해양에 다시 유입되면 수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오는 9월 세계섬박람회 개최를 앞둔 여수.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무인도 국민탐사단'이 까막섬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낸다. 정해진 야영장도 없는 섬에서 잠자리를 만들고 음식을 나누는 사이 낯선 이들은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떠나기 전에는 해안의 쓰레기를 걷어내며 섬을 지킬 책임도 나눈다.
거문도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삼산면민 체육대회에 10개 마을 주민 7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마을의 명예를 걸고 한판 승부를 펼치며,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나누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살아온 이웃들이 모처럼 한마음으로 어우러진다. 낯선 이를 친구로 만들고 바다 건너 이웃을 한자리에 모으는 힘. 섬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2026 '올해의 섬'으로 선정된 거문도를 조명한 KBS 1TV '다큐 On'은 2026년 8월 8일(토) 오후 10시 15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