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여기가 명당이로세!” 우리 마을 여름 건강 밥상!

  • 2024.07.24 10:07
  • 4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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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맞서지 않고 잠시 피하는 피서(避暑)는 우리 민족이 지켜온 오랜 풍습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넘기기 어려운 계절이 여름과 겨울인데, 잠시 더위와 추위를 피하며 지혜롭게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특히 여름은 봄부터 키워온 곡식과 과일들이 여무는 계절, 힘들지만 건강하게 그 시간을 잘 넘겨야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대개 피서를 위해선 삶의 터전을 떠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떠나곤 하는데, 여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특별한 마을이 있다. 이름하여 여름 명당! 마을 뒷산에 언제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 100년 가옥의 부엌 한가운데 깊은 우물이 있어 굳이 시원한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단다. 전국 방방곡곡 숨겨진 여름 명당엔 또 어찌나 진기한 사연들이 많은지…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더위를 피해 비밀 명당에서 피서를 즐기는 마을 사람들과 그들이 제철 식재료로 차려낸 여름 보양식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을 함께한다.

문경의 사과밭, 한여름에도 작업을 멈출 수 없다. 이맘때엔 주먹만 하게 자란 사과에 봉지 씌우기를 해야 하는데, 그래야 병충해가 적고 색이 예뻐진다. 뙤약볕 아래 작업을 하려니 사과 농부의 얼굴에 땀이 쏟아지는데 이럴 때 간절하게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마을 어귀 야산 밑의 석회암 동굴이 그곳이다. 이곳은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자연 동굴인데, 동굴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여름을 잊는다. 열심히 일한 농부들에겐 자연이 선물한 축복의 공간인데, 이런 동굴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다. 샘이 솟는 ‘암굴’은 여자들의 놀이터, ‘수굴’은 남자들의 차지다. 어둡고 깊은 수굴의 끝자락에는 폭포수가 쉬지 않고 쏟아지는데, 그 물에 들어가 물놀이하면 흠뻑 흘린 땀이 금세 식는다.

망중한의 계절, 특별식이 빠질 수 없다. 동굴 마을에선 문경의 자랑인 약돌 돼지에 오미자 진액을 발라 호박잎에 싸고, 동굴 속 차가운 항아리에 하루 숙성시킨다. 숙성한 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한데, 동굴이 있어 대대로 전해져 온 이 마을 맛의 비법이다. 이걸로 부족하다 싶으면 탄광이 성행하던 시절 광부들이 즐겨 먹던 족살찌개를 끓인다. ‘족살’이라고 불리는 돼지 앞다릿살을 볶아 신김치와 푹 끓여내면 농사의 고단함을 달래는 보양식이 된다. 콩밭 사이사이 무성하게 자라는 쇠비름으로 나물을 무치고 장떡까지 올리면 마을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여름 밥상이 완성된다. 시원한 동굴 앞에 한 상 가득 차려내면 고된 몸과 마음을 충전하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자연의 선물인 동굴이 있어 여름을 더 잘 날 수 있다는 마을의 건강한 여름 나기를 만나본다.

지난해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군위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고장이다. 그래서 만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 꽤 많다. 그중 하나가 10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택이다. 대문 활짝 열어두고 오는 이를 반기는 집주인 박혜란(63세) 씨는 고향 마을의 다 쓰러져 가던 고택을 매입해 손수 고쳐 명실상부한 100년 가옥을 완성했다. 집이 다 고쳐지자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집의 역사를 오롯이 봐 온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90살이 넘은 동네 최고 어르신들은 여름이면 이 고택으로 피서를 온다. 이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은 바로 부엌이다. 그 이유는 부엌 한가운데 있는 우물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 살던 집주인은 가족들을 위해 부엌에 개인 우물을 팠는데 당시에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집을 사고 혜란 씨의 손길로 옛 모습을 되찾은 우물은 지금도 시원한 물을 양껏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한다. 8미터 깊이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구슬땀을 식히는 건 물론 옛 추억까지 소환하는데. 혜란 씨는 고택을 찾은 어르신들을 위해 초간단 여름 밥상을 준비한다. 약이 되는 진한 돌복숭아 음료와 포슬포슬하게 익은 감자를 올리는데, 분이 나는 감자를 상추에 쌈 싸 먹는 게 이 마을의 여름 별식이다. 소박하지만 함께 나눌 추억이 있어 더 특별한 100년 가옥에 차린 여름 밥상을 만난다.

제천의 수렛골 마을 사람들은 여름이면 마을 뒷산 굴 앞으로 모여든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도 굴 앞 온도는 13도! 바위 아래 굴속에서 나오는 냉기는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이다. 피서에 더할 나위 없는 이 굴은 본래 자연 동굴이 아닌 폐갱도라는데. 일제 강점기 무기 제조에 필요한 중석을 캐내던 탄광이었다. 한국 전쟁 때에는 피난처가 되기도 했던 이 굴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와 천연 냉장고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데, 3년 전 이곳으로 귀농한 안선미(67세) 씨는 이 마을 옛 음식에 관심이 많다.

뒤늦게 꿈을 펼치기 위해 100개가 넘는 장독을 장으로 채우고 있는 그녀에겐 보물단지가 하나 있다. 친정어머니의 100년 된 씨간장 독이다. 장도 장이지만 그 독에서 퍼 올린 간장 소금은 감칠맛을 내는 일등 공신이다. 안선미 씨 부부는 여름철 마을 어르신들 기력 회복을 위한 음식을 준비한다.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수수 풀떼기는 잡곡 물에 계절 채소를 넣어 되직하게 끓여낸 음식인데, 배고픈 설움을 씻어주던 음식이 건강한 여름 별식이 되었다. 또한 굴속에 보관한 직접 담근 움파김치로 장어탕을 끓여내면 올여름 끄떡없이 지낼 귀한 보양식이 완성된다. 정성 어린 건강 밥상과 함께 정겨운 마을의 여름 풍경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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