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산골 아낙, 무더위 고개를 넘다

  • 2024.07.03 14:19
  • 2일전
  • KBS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데 '그깟 더위쯤이야!' 경상남도 내륙, 산골 아낙들의 밥상 위엔 무더위를 피해 가는 지혜가 있다. 고산지에서만 나는 제철 특산물의 화려한 변신, 손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지는 건강 요리 지침서!

백두대간의 소백산맥이 지나는 경상남도 내륙지방은 유난히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한 데다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운, 내륙성 기후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경상남도 산간마을, 그곳에선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날까? “자고로 복더위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멀찍이 피해 가는 게 상책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마을 어른들의 지혜를 터득해서일까? 경상남도 내륙지방의 음식들엔 고산지에서만 나는 제철 식재료를 통해 가벼운 배앓이를 다스리고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돌리는 비법이 담겼다. 산골 아낙들의 손끝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무더위를 피해 가는 법', 경상도 향토 음식을 맛본다.

노을빛이 곱다고 하여 ‘적화현방’이라고 불렸던 백학마을. 코앞에 있는 고개 하나만 넘으면 경상북도란다. 마을에 솔솔 부는 바람은 경북 바람인지 경남 바람인지 알 수 없으나 두 바람이 만나서 더 시원하다는 마을 어르신들. 무더위에 지쳤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백학마을 이장 윤진미(55세)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푹푹 찌는 솥 앞도 마다하지 않고 어르신들을 위해 한여름 보양식을 준비하는 진미 씨. 백학마을 아낙들이 음식에 빼놓지 않고 넣는다는 비법, 바로 조피! 이곳에서는 제피라고도 불리는데, 톡 쏘면서도 알싸한 맛이 기운 빠지는 여름 날씨에 제격이란다. 조피를 갈아 넣은 겉절이에 수육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굽더더기, 국두디기버섯이라고도 불리는 흰굴뚝버섯, 워낙 귀해 명절 음식 고명으로 썼다는 석이버섯도 아낌없이 썰어 넣은 초무침까지 떡 벌어지는 한 상이 차려진다.

골목 하나를 지나면 온 마을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다는 백학마을에 잔치가 열렸다. 오가는 젓가락질과 함께 터져 나오는 웃음보따리는 숨길 수가 없다. 오랜 세월 백학마을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시간! 서툰 글씨로 한 자, 한 자 시를 써 내려가는 손길에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꾹꾹 눌러 담긴다. 하효치(85세) 씨는 아내 김순이(79) 씨가 쓴 시를 줄줄 외울 정도란다. 저마다의 삶을 품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백학마을 사람들의 여름나기 일상을 들여다본다.

고온·건조한 날씨에 적합한 과수 농사나 밭농사는 지금이 한창 바쁜 철이기 때문에 산골 아낙네들은 여름철에도 쉴 새가 없다. 9년 전, 동호마을로 귀촌한 고정아(58세) 씨는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울 만큼 숨 돌릴 틈 없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요리를 준비한다. 맛있는 냄새를 따라 정아 씨를 찾아온 동호 아낙, 백명자(65세) 씨와 김종임(63세) 씨. 동호숲에서 손수 주워 모은 도토리로 직접 쑤었다는 도토리묵도 함께다. 몸도, 마음도 지친 채 마을에 찾아온 정아 씨를 품어준 아낙들의 마음은 동호마을을 수호하듯 감싸고 있는 동호숲과 꼭 닮았다. 아낙들의 마음에 보답하듯 정아 씨도 정성껏 키운 텃밭에서 장을 봐온다. 뽕잎, 케일, 호박꽃, 그리고 마을 돌담 곳곳에 자라난 바위솔(와송)까지... 넉넉하게 찬 바구니만큼 아낙들의 행복도 가득히 담겼다.

거창 지역에서 집집마다 꼭 만들어 먹는다는 고추장물은 매콤한 고추와 멸치를 썰어 넣고, 멸치액젓이나 집간장을 넣고 졸여 쌈장처럼 먹는 향토 음식이다. 매일 같이 먹는 음식이라지만, 정아 씨의 손길을 거치면 아름다운 만찬이 된단다. 색깔별로 모아 알록달록 예쁜 도토리묵사발, 입맛 없을 때 제격이라는 바위솔상추겉절이, 아낙들이 직접 돌돌 말아 만든 고추장물쌈밥까지 한여름 아낙들을 위한 도시락이 완성됐다. 종임 씨가 운전하는 경운기에 올라탄 아낙들이 동호숲으로 소풍을 나섰다. 여름 더위도 물리치는 시원한 동호숲 아래 행복을 찾아가는 동호 아낙네들의 산골 밥상을 맛본다.

황매산 자락, 깊은 산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비로소 찾을 수 있는 보물이 있다. 바로, 무더운 여름에 더 맛이 좋다는 여름 두릅이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에도 야무진 솜씨로 여름 두릅을 수확하는 박희연(53세) 씨. 경남 진주가 고향인 희연 씨가 산골 아낙으로 살게 된 건 13년 전부터라는데. 남편인 김영훈(61세) 씨와 함께 시작한 산골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고. 그래도 영훈 씨의 도움과 함께 쏠쏠한 수확의 기쁨은 희연 씨를 어엿한 산골 아낙으로 만들어 주었단다. 우연히 산에서 발견해 나물로 무쳐 먹어보니 부드럽고 맛이 좋아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여름 두릅은 아삭한 식감에 봄 두릅보다 향긋함이 더 진해 여름철 달아난 입맛도 돌아오게 한단다.

희연 씨의 넉넉한 산골 곳간이 열리는 날! 봄의 신부가 된 딸 보라(32세) 씨와 가족들을 위해 무더위를 이길 여름 보양식 한 상을 준비한다. 사위 사랑은 장모로부터 시작된다고, 닭 대신 큼직한 오리를 잡아 푹 고아낸다. 오리 기름은 그냥도 마신다고 할 만큼 몸에 좋기 때문이란다. 희연 씨가 꼼꼼하게 쟁여둔 6년근 도라지, 황기, 황칠과 같은 산 약재에 기운이 펄펄 나게 해준다는 산양삼까지 더하면 여름 더위도 도망갈 산양삼오리백숙이 완성된다. 물 대신 맥주로 반죽해서 더 바삭하다는 여름두릅튀김, 따뜻한 성질을 가진 방앗잎을 넣어 여름철 가벼운 배앓이도 다스려 주는 방앗잎장전까지... 깊은 산골짜기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히 자라는 여름 두릅처럼 한여름 무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가족들을 챙기는 산골 아낙, 희연 씨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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