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새벽 사이, 2시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어깨 보호대에 팔꿈치 보호대까지, 단단히 무장하고, 출근길에 오르는 남자. 박주흠(43) 씨는 생수 배달 기사다. 생수 여섯 개짜리 네 묶음을, 양손에 들고 팔에 끼고, 4층 계단을 오른다. 워낙에 체력 소모가 많아서, 처음 시작했을 땐, 한 달 사이에 12kg이 빠졌단다. 그렇게 고단한 일이지만 힘내서 달릴 수 있는 건, 바로 가족의 응원 덕분이다. 한밤중 출근할 때는 아내, 하아름(43) 씨가 꼭 안아주면서 배웅을 하고. 퇴근할 때면, 4남매가 다 같이 뛰어나와서 끌어안고 뽀뽀하고, 뜨거운 환영식을 벌인다. 다른 건 몰라도 스킨십만은 최고 부자라는 여섯 식구다.
지금은 배달 기사지만, 아빠의 전직은 목사님이 다.
20년 가까이 목회를 했는데, 코로나19 시절, 교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새삼 삶을 되돌아보았다. 사실 목사는 주흠 씨의 꿈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엔 시인도 되고 싶었고, 가수도 꿈꿨었다. 그런데 목사였던 주흠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대를 이어 목사가 되길 바랐고, 부모님의 기대를 쫓아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좋은 목사가 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지만, 늘 이 길이 맞는 걸까, 숙제를 안고 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이 마흔에 ‘더는 못 하겠다’ 포기 선언을 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언지, 알고 싶어졌고, 여전히 그 길을 찾는 중이다.
마흔에 목사를 그만두고, 용접도 해보고, 입주 청소도 하고, 몇 달은 책 읽고 글 쓰면서 집에만 있었다. 당장 월급이 없으니 제일 불안했던 사람은 아내, 아름 씨. 그런데 괜찮다고, 남편을 다독였다. 남편이 목회할 때도 살뜰히 내조를 했었다. 알고 보면 그녀에겐 반전의 과거가 있단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몇 편의 영화에 배우로 이름도 올렸었다. 그 넘치는 끼를 꾹 누르고, 결혼 후엔 살림과 육아의 여왕으로 변신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없앴고, 솔선수범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들고 날 때마다 따듯하게 안아주고, 아침저녁으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양육했달까. 엄마의 노력이 통한 건지, 이 집 아이들에게는 늘,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세상에 이런 집이’, ‘대체 어머님이 누구니’
아빠의 월급날, 고생했다고 눈물을 쏟는 큰딸 지효(15). 둘째 해온이(12)와 셋째 로언이(10)는 새벽 여섯 시면 일어나서 책부터 펼친다. 막내 슬안이(6)는 영어 캠프로 집을 비운 형, 누나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찔끔. 하나같이 어찌나 착하고 사랑스러운지. 새해 첫날엔 가족 파티를 열고, 서로에게 편지를 써준다. 셋째 로언이는, ‘아빠’ 한마디만 읽고도 눈물을 글썽이고, 결국엔 돌아가면서 감동의 눈물 바람. 눈물 콧물 쏟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참 별난 가족이다.
그런데 늘 햇빛만 들 것 같은 이 가족에게도 그늘이 있다. 첫째 지효를 낳고 스물아홉에 갑상샘 암에 걸려 큰 수술을 했던 아름 씨. 얼마 전 정기검진을 했는데, 이상이 발견됐으니 재검을 해보자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주흠 씨는, 아내에게 찾아온 시련이 내 탓 같아서 애가 탄다.
한편, 주흠 씨 부모님은 여전히 아들이 다시 목사가 되길 바라시는데. 새해를 맞아서 부모님 댁을 찾은 주흠 씨와 가족들. 괜히 언성이 높아질까, 아름 씨는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렇게 때로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이 가족에겐 서로가 서로의 믿는 구석이다. 살 부대끼고, 사랑을 고백하고, 그렇게 살아있는 위로를 건네는 여섯 식구. 그러니 오늘도 마법 같은 주문을 외워본다. ‘사랑하니까 괜찮아. 행복해져라, 우리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