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국민의 손으로 뽑혔던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선고 당일, 국민은 각자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서울 곳곳에 집결했다. 환호와 울분이 교차하던 그날. 대한민국 그날의 풍경을 1406회 「대통령 탄핵, 123일만의 심판」 편에서 기록했다.
5:3 기각! 4대4 각하를 외치던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다른 길은 없었다. 그들은 돌아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고 전까지도 희망에 부풀어 있던 사람들. 무엇이 이들에게 강한 확신을 줬던 것일까.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파면까지 123일. 헌재의 시간이 길어지는 사이 우리 사회 대립과 갈등은 점점 더 깊어졌다. 가짜뉴스와 온갖 억측이 퍼지기 시작했고, 지지층을 자극하는 선동적 발언과 폭력 행위 역시 넘쳐났다.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결정하며 밝힌 이유 중 하나다. 분열된 정치, 분열된 광장, 분열된 사회. 123일 동안 우리가 목격한 모습이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분열의 길을 걷게 됐을까.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담아봤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강조해 온 전직 대통령의 행보는 아이러니하게도 헌법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귀결됐다.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헌법은 어떤 의미였을까.
2019년 검찰총장 임명 이후, 2021년 헌법 정신의 파괴를 이유로 사퇴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 2021년 6월 29일 대권 도전을 밝히며 시작됐던 정치 인생은 헌법에 발목 잡혀 끝났다.
여소야대 정국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윤 대통령의 선택 ‘계엄’. 비상계엄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그에게 헌법은 어떤 의미였나. 그의 행보를 통해 살펴본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시민들은 곧바로 국회 앞과 주요 도심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계엄 해제와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전국으로 번졌고,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촛불은 타올랐다. 탄핵소추가 의결되지 않을 땐 여의도를 가득 채웠고, 탄핵 인용을 위해 광화문, 남태령, 한강진을 가득 채웠다. 겨울의 거센 바람에도 수많은 불빛은 굳게 자리를 지키며 어두운 밤을 밝혔다.
진정으로 나라를 지킨 건 누구인가. 계엄령하에서도 국회로 향하는 장갑차를 온몸으로 막아낸 김동현 씨, 질서 있는 집회를 기획한 박민주 씨 등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이번 사태의 전환점이 됐다. 여의도 일대에서는 수많은 상점이 선결제를 통해 시위 참가자들을 응원하는 등 사회 전반의 연대가 이어졌다. 아주 작은 기적들이 모여 만들어낸 불꽃은 세상을 밝히는 커다란 빛이 됐다. 함께 울고 웃던, 서로가 서로를 살리던 현장은 난세의 영웅들이 대거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관들의 만장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됐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이 불안하던 겨울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탄핵 선고의 현장 「대통령 탄핵, 123일만의 심판」 편은 4월 11일 금요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영된다.